

벌통 안 일벌들이 전부 복제인간?
나는 처음엔 벌통 안 일벌들이 거의 비슷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여왕벌 하나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일벌들이 계속 태어나니까 당연히 유전적으로도 비슷비슷한 집단이라고 막연히 여겼다.그런데 꿀벌의 유전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꽤 복잡해진다.
벌통 안 일벌들은 모두 같은 여왕벌의 딸이다. 하지만 아빠가 다를 수 있다. 그러니까 벌통 안에는 실제로 친자매도 있고, 이부자매도 있다.
결혼비행은 아는데, 어디서 누구와 만나는가?
여왕벌이 결혼비행을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있다. 그런데 정확히 어디로 날아가고, 어떤 방식으로 수벌을 만날까?
처녀 여왕벌은 벌통 밖으로 날아가 하늘의 특정 구역으로 향한다.그곳에는 여러 벌통에서 나온 수벌들이 모여 있다.
이 장소를 수벌 집합장소, 영어로는 DCA, Drone Congregation Area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수벌들이 모여 있는 공중 맞선장이다. 여기에는 한 벌통의 수벌만 모이는 것이 아니다. 여러 벌통에서 나온 수벌들이 특정 공중 구역에 모인다. 처녀 여왕벌이 그곳에 나타나면 수벌들이 따라붙는다.
결혼비행 시기는 기후별로 정해질까?
결혼비행 시기는 달력 날짜 하나로 고정되는 구조가 아니다. 크게 보면 지역의 계절, 그날의 날씨, 수벌의 성숙도, 처녀 여왕벌의 나이가 같이 맞아야 한다. 온대지역에서는 보통 봄부터 여름 사이, 군체가 커지고 수벌이 충분히 나오는 시기에 결혼비행이 일어난다. 하지만 같은 계절이라도 날씨가 나쁘면 못 나간다. 결혼비행에는 보통 따뜻하고, 바람이 약하고, 비가 오지 않는 오후 시간이 유리하다.
독일에서 RFID로 여왕벌 비행을 관찰한 연구에서는 교미비행이 주로 오후 시간대에 집중됐고, 온도에 따라 비행 횟수와 비행 시간이 달라지는 모습이 관찰됐다.그래서 이렇게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다.
- 티결혼비행은 ‘몇 월 며칠’이 아니라, 지역 기후와 당일 날씨가 허락하는 짧은 창문을 타고 일어나는 사건이다.
- 열대지역처럼 겨울 구분이 약한 곳에서는 온대지역처럼 뚜렷한 봄·여름 중심의 번식 리듬이 덜할 수 있다.
- 반대로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는 월동이 끝나고 군체가 성장한 뒤, 수벌이 충분히 나온 시기가 중요해진다.
즉 결혼비행 시기는 기후별로 다르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기후가 큰 틀을 만들고, 실제 비행 여부는 그날의 날씨가 결정한다.
한 번 나가서 한 마리만 만나는 구조?
한 번 나가서 수벌 한 마리와 교미하고 끝나는 구조처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여왕벌은 교미비행 중 여러 수벌과 연속으로 교미한다. 여왕벌은 생애 초기에 교미비행을 하고, 이 시기에 충분한 정자를 얻어 이후 알을 수정하는 데 사용한다.수벌 입장에서 이 순간은 인생 최대 이벤트이자 마지막 이벤트다. 성공하면 죽는다. 수벌은 교미 과정에서 몸 안에 접혀 있던 생식기관이 뒤집혀 나와 여왕벌에게 정자를 주입한다. 그리고 교미 후 여왕벌에게서 떨어져 나올 때 그 기관이 손상되며 죽는다.
처음엔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암벌에게 독침이 있다면, 수벌에게는 생식기가 침 같은 건가?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정확하지 않다.무엇이 침이 되었는가는 뒤에 잠깐 언급된다. 독침은 방어와 공격에 쓰이는 기관이고, 수벌의 생식기관은 번식을 위한 기관이다. 암벌에게 독침이 생존 장치라면, 수벌에게 생식기관은 유전자를 남기고 자신을 끝내는 번식용 자폭 버튼이다. 일단 암벌이나 수벌이나 한 번 쓰면 뽑혀 죽는다.
교미에 실패한 수벌은 다시 벌통으로 돌아간다. 꿀을 먹고 다음 기회를 노린다. 성공한 수벌은 죽고, 실패한 수벌은 귀가한다. 실패한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여왕벌은 그때 받은 정자를 평생 쓴다?
여왕벌 교미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교미 횟수 자체가 아니다. 진짜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여왕벌은 젊을 때 교미비행에서 얻은 정자를 몸속에 저장해두고, 그 정자를 몇 년 동안 사용한다. 사람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상하다. 정자라는 것은 금방 죽는 세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꿀벌 여왕벌은 다르다.
여왕벌은 교미 후 정자를 저정낭, 영어로는 spermatheca라는 기관에 저장한다.이 기관은 단순한 보관 주머니가 아니다. 정자를 오래 살리기 위한 생화학적 환경을 유지하는 특수 저장기관에 가깝다. 연구에 따르면 새로 교미한 꿀벌 여왕의 저정낭에는 보통 수백만 개의 정자가 저장된다. 자료에 따라 대략 400만~700만 개 수준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여왕벌은 그 정자를 이용해 매일 많은 수정란을 만든다. 여기서 핵심은 이거다. 수벌은 교미 후 죽지만, 수벌의 정자는 여왕벌 몸속에서 몇 년 동안 살아남아 계속 자식을 만든다. 수벌 입장에서 보면 몸은 죽었지만, 정자는 여왕벌 안에서 장기 생존하는 셈이다.
동물별 정자 저장 기간은 얼마나 다를까?
정자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는 동물마다 크게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기간은 공기 중이나 시험관에서의 생존 시간이 아니다. 암컷 몸속에서 수정 가능성을 유지하는 저장 기간에 가깝다.
대략 비교하면 이렇다.
- 사람을 포함한 일반 포유류: 보통 며칠 수준
- 일부 조류: 며칠에서 몇 주, 칠면조는 마지막 교미 후 71일 뒤에도 수정란을 낳은 사례가 보고됨
- 박쥐: 일부 종은 겨울잠 기간 동안 수개월, 자료에 따라 약 300일 수준까지 저장 가능
- 파충류: 거북·뱀 등에서 수개월~수년 저장 사례가 있음
- 꿀벌 여왕: 몇 년 동안 저장 가능
- 개미 같은 사회성 벌목 곤충의 여왕: 종에 따라 10년 이상 저장 가능
이렇게 놓고 보면 꿀벌 여왕의 정자 저장 능력은 확실히 특이하다. 특히 일반 포유류 기준으로 보면 거의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동물계 전체로 보면 꿀벌만 유일한 괴물은 아니다. 박쥐, 파충류, 새, 개미 같은 동물들도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정자를 오래 보관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다만 꿀벌 여왕의 경우 특별한 점이 있다. 교미는 생애 초기에 몰아서 하고, 이후 다시 교미하지 않은 채 저장 정자로 평생 산란을 이어간다. 이 점에서 꿀벌 여왕의 저정낭은 거의 생식용 장기 저장고처럼 보인다.
여러 수벌의 정자는 여왕벌 몸속에서 다 섞일까?
여왕벌은 여러 수벌과 교미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A수벌 정자, B수벌 정자, C수벌 정자가 여왕벌 몸속에서 완전히 섞일까? 대답은 이렇게 정리하는 게 안전하다.
대체로 섞이지만, 처음부터 완벽하게 균일하게 섞인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교미 후 수벌들의 정자는 먼저 여왕벌의 생식관 쪽에 들어간다.
그중 일부만 저정낭으로 이동해 장기 저장된다.
여러 수벌의 정자는 이 과정에서 섞인다.
그래서 일벌 자식들을 보면 여러 부계 라인이 벌통 안에 함께 나타난다.
하지만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수벌의 정자가 저정낭에 도달하기 전부터 완전히 균일하게 섞이는 것은 아니며, 특히 교미 수벌 수가 적을 때는 불완전한 혼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됐다. 또 여왕벌의 생애 동안 어떤 부계 라인의 일벌 비율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이건 여왕벌이 의식적으로 “오늘은 A수벌 정자를 써야지” 하고 고르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저장기관 안에서의 섞임, 정자 이동, 정자 생존성, 사용 순서 같은 생물학적 과정이 반영된 결과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여왕벌 몸속 저정낭은 여러 수벌의 정자가 들어간 장기 보관소다. 다만 완벽히 흔들어 섞은 주스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며 섞이고 사용되는 살아 있는 저장 시스템에 가깝다. 그래서 벌통 안 일벌들의 아빠 비율은 단순히 “수벌 10마리와 교미했으니 각각 10%씩”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수벌의 정자는 더 많이 후손을 남길 수 있고, 어떤 수벌의 정자는 상대적으로 적게 남을 수 있다.
수벌에게 독침이 없는 이유
수벌은 독침이 없다. 이유가 흥미롭다. 벌의 독침은 암컷의 산란관 계열 기관에서 진화한 구조다. 쉽게 말하면, 암컷이 알을 낳는 구조 쪽에서 갈라져 나온 기관이다. 그래서 수컷인 수벌에게는 독침이 없다. 암벌의 독침은 그냥 찌르는 도구가 아니다. 원래 ‘알을 낳는 장치’ 쪽에서 갈라져 나온 진화의 흔적이다. 수벌은 찌를 수 없다. 방어용 독침이 없다. 수벌에게 있는 것은 독침이 아니라, 교미 후 자신을 끝내는 일회용 생식기관이다.
여왕벌도 독침이 있을까?
여왕벌도 독침이 있다. 다만 일벌의 독침과 쓰임새가 다르다. 일벌의 독침은 벌통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 장치다. 포유류 피부를 찌르면 독침이 피부에 걸려 빠져나오다가 일벌이 죽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여왕벌의 독침은 주로 경쟁 여왕벌을 상대하는 데 쓰이는 쪽에 가깝다. 정리하면 이렇다. 일벌의 독침은 군체 방어용이고, 여왕벌의 독침은 여왕 경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 같은 독침이라도 역할이 다르다.
여왕벌 독과 일벌 독은 같을까?
처음엔 독침이 있으면 독도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왕벌 독과 일벌 독은 완전히 같은 구성이 아니다. 일벌의 독은 주로 벌통을 지키는 데 쓰인다. 외부 침입자가 벌통을 위협할 때 일벌이 쏘고, 이때 독은 통증, 붓기, 염증,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일벌 독에는 여러 성분이 섞여 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 성분들이 알려져 있다(난 히스타민만 들어봤어...)
- 멜리틴
- 포스포리파아제 A2
- 히알루로니다아제
- 아파민
- 히스타민 계열 물질
여기서 포스포리파아제 A2는 꽤 중요한 성분이다. 쉽게 말하면 세포막의 지방 성분을 자르는 효소다. 즉, 포스포리파아제는 세포막을 건드리는 효소 가위라고 보면 된다. 이 효소는 세포막 손상, 염증 반응, 알레르기 반응과 연결된다. 그런데 여왕벌 독은 일벌 독과 구성이 다르다. 연구에 따르면 여왕벌 독은 일벌 독에 있는 일부 독소가 빠져 있고, 여왕벌 독에서만 보이는 독소도 있다. 또 여왕벌 독은 일벌 독보다 포스포리파아제 활성이 훨씬 낮다고 보고됐다. (뭔 소리냐...그래서? 어떤게 더 아퍼?) 같은 꿀벌의 독침이라도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벌의 독은 외부 침입자를 막는 방어용 독에 가깝다. 여왕벌의 독은 주로 경쟁 여왕벌을 상대하는 특수한 상황에 맞춰진 독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일벌 독은 벌통 방어용 독이고, 여왕벌 독은 여왕 경쟁용 독이다. 같은 독침이라도 설계 목적이 다르니, 독의 성분도 완전히 같지 않다.
여왕벌에게 쏘이면 일벌보다 더 아플까?
여왕벌은 몸집도 크고, 여왕이라는 이름도 있으니까 독이 더 강할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더 아플까?
실제 양봉가 경험담이 몇 가지 있다.
- NEIBA News의 한 양봉가 사례에서는 처녀 여왕벌 두 마리를 마킹하다가 둘 다에게 쏘였다고 한다. 이 양봉가는 여왕벌에게 쏘인 통증이 일벌에게 쏘였을 때보다 훨씬 약했다고 적었다. 또 여왕벌의 독침은 찌른 후에도 일벌과 달리 여왕벌의 몸에서 뽑혀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 Beesource 양봉 포럼에는 “Can Queen bees sting?”, “Just got stung by a queen” 같은 여왕벌 쏘임 관련 경험담 글들이 보인다. 다만 이런 포럼 글은 개인 경험담이므로 논문처럼 다루면 안 된다.
- Beemaster 포럼에서는 여왕벌에게 쏘인 일화가 언급되지만, 동시에 수십 년 동안 여왕벌을 만졌어도 한 번도 쏘이지 않았다는 양봉가 이야기도 나온다. 즉 여왕벌 쏘임 자체가 흔한 사건은 아니다.
- The Walrus and the Honey Bee 쪽 글은 조금 더 조심스럽다. 여왕벌에게 쏘였다는 사례가 워낙 드물어서, 일부는 여왕벌을 다루는 중 주변 일벌에게 쏘인 것을 여왕벌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암벌은 생식기관도 있고 독침도 있을까?
여왕벌은 알을 낳는 생식기관도 있고, 독침도 있다. 알을 독침으로 낳는 구조는 아니다. 독침은 독침이고, 생식기관은 생식기관이다. 정확히 말하면 독침은 산란관 계열 기관에서 진화적으로 변형된 구조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 여왕벌: 알 낳는 생식기관 있음, 독침도 있음
- 일벌: 암컷이라 독침 있음, 보통 생식능력은 억제됨(억압된 산란의 욕망, 해방 가능)
- 수벌: 수컷이라 독침 없음, 교미기관 있음
암컷은 산란관 계열에서 독침이라는 생존 장치를 얻었다. 수컷은 교미기관 하나에 자신의 생을 걸었다. 꿀벌 사회는 귀여운 자연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안쪽 구조는 유전과 생존이 만든 냉정한 시스템이다.
수벌,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수벌은 묘한 존재다.
아버지가 없다.
자기도 아들을 만들 수 없다.
딸은 만들 수 있는데, 아들은 직접 만들 수 없다.
암수가 같은 수의 염색체를 가진 인간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수벌은 수정되지 않은 알, 즉 무정란에서 나온다. 그래서 수벌은 아버지가 없다.
- 수벌: 엄마 O, 아빠 X
꿀벌의 기본 구조는 이렇다.
- 수정란 → 암컷 → 일벌 또는 여왕벌
- 무정란 → 수컷 → 수벌
즉 수벌은 수컷과 암컷의 유전자가 섞여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다. 암컷이 낳은 무정란에서 태어난다.
그럼 수벌은 처녀 여왕벌에게서만 나올까? 교미를 끝낸 정상 여왕벌도 수벌을 낳을 수 있다.
여왕벌은 알을 낳을 때 저장해둔 정자를 쓰면 수정란을 만들고, 정자를 쓰지 않으면 무정란을 만든다. 정자를 쓰면 암컷이 나온다. 정자를 쓰지 않으면 수벌이 나온다. 처녀 여왕벌도 수벌을 낳을 수 있다. 처녀 여왕벌은 정자를 저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을 낳아도 수정란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처녀 여왕벌이 낳는 알은 수벌로만 발달한다. 일벌도 수벌을 낳을 수 있다. 일벌도 암컷이다. 평소에는 여왕벌의 페로몬과 군체 질서 때문에 산란이 억제되어 있다. 하지만 여왕벌이 사라지거나 군체가 망가지면 일부 일벌이 알을 낳을 수 있다. 다만 일벌은 교미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자가 없다.
그래서 일벌이 낳는 알도 무정란이고, 결과는 수벌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수벌은 아버지가 없지만, 엄마는 있다.
그 엄마는 다음 중 하나일 수 있다.
- 정상 교미 여왕벌
- 처녀 여왕벌
- 여왕 없는 벌통의 산란 일벌
수벌은 반쪽이?
수벌은 반수체 개체이다 (나 처음 들어봄) 꿀벌의 염색체 수는 암컷과 수컷이 다르다.
- 수벌: 반수체, 보통 n = 16
- 일벌/여왕벌: 이배체, 보통 2n = 32
수벌은 무정란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유전자 한 벌만 가진다. 반면 일벌과 여왕벌은 수정란에서 태어나므로 엄마 쪽 유전자 한 벌과 아빠 쪽 유전자 한 벌을 가진다. 그래서 수벌은 유전적으로 특이하다. 아버지는 없다. 하지만 딸에게는 자기 유전자를 통째로 넘긴다.
사람은 23쌍, 꿀벌은 16쌍
사람은 보통 염색체가 46개다. 그런데 이건 46종류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정확히는 1번부터 23번까지 염색체가 있고, 각각 한 쌍씩 있어서 총 46개다. 즉 사람은 이렇게 되어 있다.
- 사람 = 23쌍 = 46개
아빠에게서 한 벌, 엄마에게서 한 벌을 받은 구조다. 꿀벌 암컷도 비슷한 방식으로 보면 여왕벌과 일벌은 암컷이라 염색체가 32개다. 이것도 32종류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정확히는 1번부터 16번까지 염색체가 있고, 각각 한 쌍씩 있어서 총 32개다. 반면 수벌은 다르다. 수벌은 염색체가 16개뿐이다. 즉 1번부터 16번까지 염색체를 한 개씩만 가진다.
- 수벌 = 16개
그래서 수벌은 염색체 쌍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여왕벌이 알을 만들 때 32개 중 아무거나 16개를 막 뽑는 게 아니다.
1번 염색체 쌍에서 하나,
2번 염색체 쌍에서 하나,
3번 염색체 쌍에서 하나,
...
16번 염색체 쌍에서 하나
이런 식으로 각 번호별 쌍에서 하나씩 들어간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왕벌은 16쌍의 염색체에서 각 쌍마다 하나씩 들어간 난자를 만든다. 여기에 수벌의 정자 16개가 합쳐지면 다시 32개짜리 암컷이 된다. 그래서 같은 아빠 수벌에게서 태어난 일벌들은 아빠 쪽 유전자를 똑같이 받는다. 하지만 엄마 여왕벌이 만드는 난자는 매번 조합이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아빠를 가진 일벌들도 완전한 복제 개체는 아니다. 아빠 쪽은 같지만, 엄마 쪽 조합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수벌은 유전자 한 벌만 가진다. 여왕벌은 유전자 두 벌을 가지고 있다. 딸 일벌은 여왕벌에게서 한 벌, 수벌에게서 한 벌을 받아 태어난다. 그래서 꿀벌 집안 족보는 인간 기준으로 보면 꽤 낯설다.
수벌에게 아들은 없다? 딸과 손자, 손녀가 있을 뿐
수벌은 직접 아들을 만들지 못한다. 수벌이 여왕벌과 교미해서 정자를 제공하면, 그 정자로 수정된 알은 암컷이 된다. 즉 수벌이 만드는 자식은 아들이 아니라 딸이다. 그 딸은 일벌이 되거나, 특별한 조건에서는 여왕벌이 된다. 수벌 입장에서는 딸은 있어도 아들은 없다. 수벌의 유전자는 딸에게 들어가고, 그 딸이 여왕벌이 되어 무정란을 낳을 때 다음 세대 수벌이 나온다. 그러니까 수벌의 유전자는 한 세대를 건너 손자 세대에서 다시 수벌 형태로 나타난다.
같은 아빠를 가진 일벌은 유전자가 똑같을까?
같은 수벌의 정자로 태어난 일벌들은 아빠 쪽 유전자를 동일하게 받는다. 수벌은 n = 16이라 유전자 한 벌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아빠를 가진 일벌들도 복제 개체는 아니다. 이유는 엄마 여왕벌 쪽 유전자가 매번 다르게 섞이기 때문이다.
여왕벌은 2n = 32다. 알을 만들 때 그중 n = 16만 넘긴다. 이때 조합이 매번 달라진다. 구조로 쓰면 이렇다.
일벌1 = 아빠A 유전자 + 엄마조합1
일벌2 = 아빠A 유전자 + 엄마조합2
아빠는 같아도 엄마 쪽 조합이 다르다. 그래서 같은 아빠를 가진 일벌들도 쌍둥이가 아니다.
벌통 안에는 아빠가 다른 자매들이 섞여 있다
여왕벌은 여러 수벌과 교미하고, 그 정자를 몸 안에 저장해둔다. 그리고 그 정자를 사용해 알을 낳는다. 그래서 벌통 안 일벌들은 모두 같은 여왕벌의 딸이지만, 아빠가 다를 수 있다. 벌통 안에는 이런 식의 부계 라인이 섞여 있다.
A수벌 계열 일벌
B수벌 계열 일벌
C수벌 계열 일벌
D수벌 계열 일벌
전부 같은 엄마의 딸이다. 하지만 아빠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벌통 안에는 친자매도 있고, 이부자매도 있다.
친자매와 이부자매, 얼마나 다를까?
같은 여왕벌에게서 태어난 일벌이라도 아빠가 같으냐 다르냐에 따라 유전적 가까움이 달라진다. 같은 아빠를 가진 일벌들은 보통 super-sisters, 즉 초자매 또는 친자매처럼 설명된다. 수벌은 반수체라 자기 유전자 한 벌을 딸들에게 그대로 넘긴다. 그래서 같은 아빠를 가진 일벌들은 아빠 쪽 유전자를 공유하고, 엄마 쪽 유전자는 각자 다른 조합으로 받는다. 이 때문에 같은 아빠 일벌끼리의 평균 유전적 연관도는 약 r = 0.75로 설명된다. 반대로 엄마는 같지만 아빠가 다른 일벌들은 이부자매에 가깝다. 이 경우 평균 유전적 연관도는 약 r = 0.25로 설명된다. 인간 기준으로 보면 이상하다.인간 친자매는 보통 평균 r = 0.5 정도로 말하는데, 꿀벌에서는 같은 아빠 일벌끼리가 인간 친자매보다 더 가까운 셈이다.
반대로 아빠가 다르면 같은 벌통 안 자매라도 유전적으로는 훨씬 멀어진다. 그러니까 벌통은 하나의 가족처럼 보이지만, 안쪽에는 여러 부계 라인이 섞여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부서별 DNA가 다른 느낌이다.
아빠가 다르면 하는 일도 달라질까?
여기서 더 궁금한 질문. 아빠가 다르면 일벌들의 행동도 달라질까? 연구에서는 벌통 안 부계 라인마다 특정 행동 성향이나 업무 참여 비율이 달라진다는 관찰이 나왔다. 예를 들어 어떤 부계 라인은 특정 작업에 더 많이 나타나고, 다른 부계 라인은 또 다른 작업에서 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벌의 행동은 유전자 하나로 정해지는 고정 직업표는 아니다. 나이, 호르몬, 벌통의 필요, 먹이 상태, 외부 위협, 계절 같은 요인이 같이 작동한다. 부계 라인에 따라 행동 문턱값과 성향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위생 행동, 질병 저항성, 방어성, 채집 행동 같은 특성은 유전적 배경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고된다. 그래서 여왕벌이 여러 수벌과 교미해 벌통 안에 다양한 부계 라인을 만드는 것은 군체 전체에 유리할 수 있다. 단일한 성향의 일벌만 있는 벌통보다, 서로 다른 성향의 일벌들이 섞인 벌통이 환경 변화와 질병에 더 유연하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친자매끼리는 더 친할까?
같은 아빠를 가진 일벌들은 유전적으로 훨씬 가깝다. 그럼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든다. 같은 아빠 일벌끼리 더 뭉치나? 우리 아빠 같은 애들끼리 따로 줄 서나? 완전히 엉뚱한 상상은 아니다. 같은 부계 라인의 일벌들은 행동 성향이 닮는다. 어떤 부계 라인은 특정 작업에 더 자주 참여하고, 다른 부계 라인은 또 다른 작업에서 더 많이 보인다. 그러면 같은 아빠를 가진 일벌들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작업 안에서 더 자주 마주친다. 밖에서 보면 이렇게 보인다. 어? 쟤네 같은 아빠 애들끼리 더 친한 거 아냐? 물론 이걸 사람식 감정으로 보면 곤란하다. 꿀벌이 “쟤는 내 친자매니까 더 좋아”라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같은 부계 라인의 일벌들이 비슷한 일을 하면서 더 자주 붙어 있는 장면은 나온다.
늙거나 죽은 벌은 어떻게 될까?
벌통 안에서 벌이 죽으면 그냥 방치되지 않는다. 장의사 역할을 하는 일벌들이 있다. 죽은 벌을 감지하고, 물거나 끌어서 벌통 밖으로 버린다. 이건 감정적인 장례식이 아니다. 위생 관리다. 벌통 안에 죽은 벌을 놔두면 병균이 퍼질 수 있다. 죽은 벌 제거는 군체의 사회적 면역, 즉 벌통 전체 위생과 연결된 행동이다. 늙어서 제대로 날지 못하거나, 병들고 약해진 벌은 벌통 밖에서 죽거나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이 부분은 상황과 원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단정적으로 쓰기보다 “그럴 수 있다” 정도가 안전하다. 꿀벌 사회는 따뜻한 가족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실제 운영 원리는 냉정하다. 군체 전체가 살아야 한다. 개체 하나하나의 사정보다 벌통 전체 생존이 우선이다.
장의사 벌은 평생 장의사일까?
장의사 벌이 평생 장의사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꿀벌 일벌은 나이에 따라 역할이 바뀐다. 어릴 때는 벌통 안에서 청소, 육아, 관리 같은 일을 많이 한다. 나이가 들수록 외부로 나가 꽃꿀과 꽃가루를 모으는 일을 한다. 장의사 벌도 일벌의 여러 역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어떤 일벌들이 죽은 벌을 잘 감지하고 치우는 일을 맡는다. 꿀벌 사회는 고정된 직업사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이와 상황에 따라 역할이 계속 바뀐다.
벌의 수명도 계절에 따라 다르다
일벌 수명도 단순하지 않다. 여름 일벌은 짧게 산다. 보통 몇 주 정도다. 여름에는 일이 많다. 육아도 해야 하고, 벌집 관리도 해야 하고, 밖에 나가서 꿀도 모아야 한다. 몸이 빨리 닳는다. 반대로 겨울 일벌은 훨씬 오래 산다. 겨울에는 외부 활동이 줄고, 벌통 안에서 군체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몇 달까지 살 수 있다. 4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는 여름벌과 겨울벌의 차이가 크다. 열대지역처럼 겨울이 약한 곳에서는 계속 활동이 이어진다. 그래서 온대지역의 겨울벌처럼 오래 버티는 구조가 덜 뚜렷하다.
꿀벌 사회는...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다. 여왕벌 하나가 낳았으니 벌통 안 일벌들은 거의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꿀벌은 내가 어릴 때 배웠던 것보다 더 다른 것이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
- 수벌: 아빠 없어, 독침 없어, 엄마 잘못 만나면 위험할 수도 있어(엄마가 여왕벌 or 일벌), 교미하면 죽어(그나마 성공적인 삶...), 죽으면 죽었지 일은 안해
- 여왕벌: 난교 후 정절, 그때 밑천으로 평생 출산, 경쟁자 제거용 은장도 소유
- 일벌: 친자매가 엄마보다 유전적으로 훨씬 더 가까워(친자매보다 못한 엄마), 일생에 걸쳐 직업 계속 바꿔, 여름에 태어나면 과로로 빨리 죽어
후기 : 전자담배 빨면서 우연히 본 죽어가는 꿀벌을 보며 궁금증으로 시작한 글인데...
인공지능 시대인데...
그것도 인공지능 엄청 사용한 글인데...
이 글을 쓰는데 6시간이나 걸렸다. 미쳤다.
꼬리를 무는 궁금증에 자료수집, AI와 토론, 한 주제로 AI간 싸움시키기, 교차검증이나 문체교정, 내용수정을 계속 반복하느라 시간 다 버렸다. 그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어 Gooooooooooooooood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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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https://beemaster.com/forum/index.php?topic=53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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