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수와 얽힌 38인

예수와 얽힌 38인 - 제12회 헤롯과 로마의 처형 체제

자료 상태: 웹 검색 수행. 신약성서의 헤롯·빌라도·바라바·백부장 본문,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와 《유대 전쟁사》, 필론의 《가이우스에게 보낸 사절》, 타키투스의 《연대기》, 가이사랴의 빌라도 비문, 로마 속주 행정·십자가형·수난 서사·본문비평 연구를 대조하였다. 복음서의 문학적 구성과 역사적으로 개연성 있는 핵심을 구분하고, 수난 서사의 반유대주의적 수용은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로켓배송으로 빠르게, 로켓와우 멤버십으로 할인과 무료 반품까지 | 쿠팡

쿠팡 로켓배송, 로켓프레시, 로켓직구, 로켓럭셔리까지 쿠팡 멤버십으로 모든 혜택을 한 번에 누려보세요. 쿠팡 와우회원은 무료배송도 가능합니다

www.coupang.com

 

제12회 헤롯과 로마의 처형 체제

헤롯 안티파스·본디오 빌라도·바라바·이름 없는 로마 백부장

제11회는 예수 체포와 심문 과정에서 말고·안나스·가야파가 차지한 위치를 다루었다. 그러나 체포와 고발만으로 십자가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제사장 지도층이 예수를 위험 인물로 판단하고 로마 당국에 넘겼을 가능성과, 실제 사형을 선고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집행한 권력은 구분해야 한다. 예수의 죽음은 유대 내부의 종교적 갈등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로마 제국의 속주 행정과 공개 처형 체제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네 인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예수와 관계를 맺었다. 헤롯 안티파스(헤롯 대왕의 아들로 갈릴리와 페레아를 통치한 분봉왕)는 예수의 주요 활동 지역을 다스렸고 세례 요한을 처형했으나, 예수를 직접 심문했다는 장면은 누가복음에만 나타난다. 본디오 빌라도(서기 26~36년경 유대를 통치한 로마 장관)는 네 복음서 모두에서 십자가형을 승인한 최종 행정 책임자이다. 바라바(복음서에서 예수 대신 석방된 죄수)는 수난 서사에서 예수와 대조되지만, 복음서 밖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름 없는 로마 백부장(로마 군단 또는 보조군에서 중간 지휘를 맡은 장교)은 처형 현장을 대표하지만, 그의 고백은 복음서마다 다르게 기록된다.

따라서 이 장의 핵심 질문은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라는 단문에 답하는 데 있지 않다. 누가 체포에 관여했는가, 누가 고발했는가, 누가 법적 판단을 내렸는가, 누가 군사력을 동원했는가, 누가 처형을 집행했는가를 분해해야 한다. 동시에 복음서가 왜 빌라도의 책임을 완화하고 제사장 지도층과 군중의 책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I. 갈릴리의 분봉왕과 유대의 로마 장관

1. 예수의 죽음을 결정한 권력 구조

예수의 활동 무대는 하나의 통일된 유대 국가가 아니었다. 갈릴리와 페레아는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의 승인 아래 다스렸고, 유대·사마리아·이두매는 서기 6년 이후 로마가 직접 통치하는 속주가 되었다. 예수는 갈릴리에서 활동했지만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처형되었다. 그의 최후는 지역 통치자, 성전 귀족, 로마 총독, 군사 집행자가 겹치는 권력 구조 속에서 일어났다.

대제사장 가문은 성전 질서와 예루살렘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를 가졌다. 유월절(출애굽을 기념하는 유대교 순례 절기)에는 대규모 순례객이 모였고, 로마 당국은 민족적·종교적 열기가 정치적 소요로 번지는 것을 경계했다. 성전에서 예언적 시위를 벌이고 왕국의 도래를 선포한 갈릴리 인물은 제사장 지도층에게도, 로마 행정관에게도 위험 요소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위험을 감지한 주체와 처형 권한을 가진 주체는 같지 않았다. 예수의 체포와 고발에 제사장 지도층이 관여했을 개연성은 높지만, 십자가형은 로마의 군사 형벌이었다. 죄패(처형된 사람의 혐의를 적어 공개한 표지)에 적힌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는 신학적 논쟁보다 정치적 왕권 주장이 처형의 공식적 이유였음을 시사한다.

자료 상태: 제사장 지도층의 고발 가능성과 로마 총독의 최종 사형 권한은 동시에 인정할 수 있다. 두 책임을 하나로 합치거나 어느 한쪽을 지우는 해석은 자료 구조를 왜곡한다.

2. 네 복음서의 인물 배치

마가복음은 수난 서사의 기본 골격을 제공한다. 제사장 지도층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기고,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인지 묻는다. 군중은 바라바의 석방과 예수의 십자가형을 요구한다.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를 채찍질한 뒤 십자가형에 넘긴다. 처형 뒤 백부장은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의 구조에 빌라도의 아내의 꿈, 빌라도의 손 씻기, 군중의 피 책임 선언을 덧붙인다. 빌라도는 더욱 무죄한 인물을 마지못해 넘기는 인물로 그려지고, 책임은 군중에게 더 강하게 이동한다. 이 추가 장면들은 역사적 법정 기록이라기보다 마태복음의 무죄·책임·성서 성취 주제를 반영한다.

누가복음은 예수를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내는 장면을 삽입한다. 빌라도와 헤롯은 모두 예수에게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찾지 못한 인물로 배치된다. 누가는 백부장의 고백도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으로 바꾼다. 이는 누가복음이 예수의 정치적 무죄와 의로움을 강조하는 방식과 연결된다.

요한복음은 긴 법정 대화를 구성한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왕권과 진리에 관해 묻고, 제사장 지도층과 반복해서 협상한다. 바라바는 “레스테스”(강도·무장 약탈자·반란자를 가리킬 수 있는 그리스어)로 불린다. 십자가 아래의 백부장 고백은 없으며, 대신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이름 없는 병사가 등장한다.

3. 복음서는 재판 기록인가

복음서의 재판 장면에는 직접 인용 형식의 대화가 많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이 로마 장관의 관저 안에서 모든 문답을 기록했다는 증거는 없다. 복음서는 예수 사후 수십 년 뒤 공동체가 보존한 기억과 저자의 신학적·문학적 구성을 결합한 서사이다. 대화의 핵심 주제가 역사적 상황을 반영할 수는 있으나, 문장 하나하나를 속기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분석은 이 두 층을 분리한다. 예수가 정치적 위험 인물로 고발되어 빌라도의 명령 아래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골격은 높은 개연성을 가진다. 그러나 헤롯에게 이송된 절차, 빌라도의 반복적인 무죄 선언, 손 씻기, 군중의 정확한 문구, 백부장의 고백은 각 복음서의 서사적 목적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II. 헤롯 안티파스

4. 왕이 아니었던 ‘헤롯 왕’

헤롯 안티파스는 헤롯 대왕의 아들이었다. 헤롯 대왕이 죽은 뒤 그의 영토는 아들들에게 분할되었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그 분할을 승인했다.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페레아를 맡았지만 정식 왕위를 받지 못했다. 그의 공식 칭호는 테트라르케스(본래 ‘사분의 일 통치자’를 뜻하나 로마 시대에는 하위 지역 군주에게 사용된 칭호), 곧 분봉왕이었다.

복음서는 때때로 그를 “왕”이라고 부른다. 이는 엄밀한 행정 직함이라기보다 통속적 표현이거나 서사적 호칭일 수 있다. 안티파스 자신은 왕 칭호를 원했으나 결국 얻지 못했고, 말년에는 이 요구가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헤롯 대왕, 헤롯 안티파스, 헤롯 아그리파 1세를 모두 같은 “헤롯 왕”으로 뭉뚱그리면 시대와 권한이 뒤섞인다.

안티파스의 지위는 로마에 종속된 지역 군주였다. 그는 조세를 거두고 도시를 건설하며 군사력을 유지했지만, 황제의 승인 없이는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의 통치는 자율성과 종속성이 결합된 헤롯 왕가 정치의 전형이었다.

5. 갈릴리와 페레아의 통치자

안티파스는 기원전 4년경부터 서기 39년까지 약 40년간 갈릴리와 페레아를 다스렸다. 예수의 생애 대부분이 그의 통치기와 겹친다. 갈릴리의 나사렛·가버나움·벳새다 주변에서 활동한 예수는 행정적으로 안티파스의 영역 안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 전승에서 안티파스는 빌라도만큼 자주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세포리스(갈릴리 중부의 행정·도시 중심지)를 재건하고 티베리아스(갈릴리 호숫가에 건설한 새 수도)를 세웠다. 티베리아스는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딴 도시로, 행정 중심·주화 발행·왕궁·시장 기능을 갖추었다. 도시 건설은 고용과 유통을 늘렸을 수 있으나, 조세와 노동 부담을 농촌에 전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 연구는 안티파스의 도시화가 갈릴리 경제를 일방적으로 파괴했는지, 오히려 성장시켰는지를 놓고 견해가 갈린다.

6. 헤로디아와의 혼인

안티파스는 처음에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의 딸 파사엘리스와 혼인했다. 이후 그는 이복형제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첫 아내와 이혼했다. 헤로디아의 전 남편이 누구였는지는 복음서와 요세푸스의 이름 체계가 복잡하여 정밀한 가계도 논쟁이 남아 있으나, 혼인이 유대 율법상 문제가 되었다는 전승은 공통적이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안티파스가 형제의 아내를 취한 일을 비판한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원한을 품고, 연회에서 춤춘 딸의 요청을 통해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다. 안티파스는 맹세와 손님들 때문에 마지못해 처형을 명령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 이야기는 왕실 연회, 성적 매혹, 경솔한 맹세, 의로운 예언자의 죽음을 결합한다. 에스더서의 왕실 연회나 엘리야 전승을 연상시키는 문학적 요소도 지적된다. 헤로디아의 딸은 복음서에서 이름이 없으며, 살로메라는 이름은 요세푸스의 왕가 족보에서 알려진다. 두 자료를 결합해 춤춘 딸을 살로메로 부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복음서 자체가 그 이름을 전한 것은 아니다.

7. 요세푸스가 설명하는 다른 처형 동기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 18권에서 세례 요한을 덕을 가르치고 세례를 베푼 인물로 묘사한다. 안티파스가 요한을 마카이로스(사해 동쪽의 요새)에 가두어 죽였다는 점은 복음서와 겹친다. 그러나 처형 동기는 다르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안티파스는 요한의 큰 대중적 영향력이 반란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했다.

복음서는 혼인 비판과 헤로디아의 원한을 중심으로 하고, 요세푸스는 예방적 정치 탄압을 중심으로 한다. 두 설명은 완전히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 혼인 비판이 왕조의 정당성을 흔들고 군중을 결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원래 동기였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요세푸스는 이후 안티파스가 아레타스 4세와의 전쟁에서 패한 일을 많은 유대인이 요한을 부당하게 죽인 데 대한 신의 벌로 해석했다고 기록한다. 이 평가는 요세푸스 자신의 초자연적 판정이라기보다 당시 사람들의 해석을 전한 것이다.

자료 상태: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처형했다는 전승은 복음서와 요세푸스에 모두 나타나지만, 복음서는 혼인 갈등을, 요세푸스는 대중 동원에 대한 정치적 공포를 강조한다.

8. 예수에 대한 관심과 위협

마가복음에서 안티파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이 죽인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엘리야나 예언자로 본다. 이 장면은 예수의 정체를 둘러싼 소문을 제시하면서 세례 요한의 처형 회상으로 넘어가는 문학적 장치이다.

누가복음은 안티파스가 예수를 만나고 싶어 했으며 기적을 보기를 기대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정치적 정보 수집과 호기심을 결합한 묘사이다. 그러나 안티파스가 예수를 체포하려 적극적으로 추적했다는 독립 자료는 없다.

누가복음 13장에서 일부 바리새인은 예수에게 안티파스가 그를 죽이려 한다며 떠나라고 경고한다. 예수는 안티파스를 “여우”라고 부르고 자신의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답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여우는 반드시 현대적 의미의 영리함만을 뜻하지 않았다. 교활함, 하찮음, 파괴성, 왕답지 못한 성격을 가리킬 수 있었다.

이 장면이 실제 위협 정보를 보존하는지, 누가복음이 예수의 예루살렘행을 설명하기 위해 구성한 것인지는 논쟁적이다. 바리새인들이 모두 예수의 적이었다는 단순한 도식과 달리, 여기서는 그들이 경고자 역할을 한다. 또한 예수는 갈릴리의 안티파스보다 예루살렘에서 예언자가 죽는 구조를 강조한다.

안티파스의 위협이 실재했다면 예수는 세례 요한과 같은 위험에 놓였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가 실제로 갈릴리에서 체포되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로마 형벌로 죽었다는 사실은 두 인물의 관할과 처형 방식이 달랐음을 보여 준다.

9. 누가복음의 헤롯 심문과 조롱

누가복음 23장에서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던 안티파스에게 보낸다. 안티파스는 예수를 보고 기뻐하며 기적을 기대하고 많은 질문을 하지만, 예수는 대답하지 않는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고발하고, 안티파스와 군인들은 예수를 업신여기며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낸다.

이 장면은 마가·마태·요한복음에 없다. 로마 행정에서 피고인의 출신지나 범죄 장소에 따라 관할 문제가 생길 수는 있었으나, 누가복음이 묘사하는 절차가 실제 관할 이송이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안티파스는 갈릴리를 다스렸지만 예루살렘에서 로마 총독의 권한을 대신할 수 없었다.

안티파스의 군인들이 예수에게 입힌 “화려한 옷”은 왕권을 조롱하는 표지로 읽힌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로마 군인들이 자주색 또는 붉은 옷과 가시관을 사용해 “유대인의 왕”을 조롱한다. 누가복음은 이 조롱의 일부를 헤롯의 궁정으로 옮긴다.

누가는 그날 헤롯과 빌라도가 친구가 되었다고 덧붙인다. 이전에 둘 사이에 어떤 적대가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필론의 황금 방패 사건에서는 헤롯 왕가의 인물들이 빌라도의 조치에 반대해 황제에게 호소한 것으로 나타나므로 긴장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화해”가 특정 역사 사건을 가리키는지, 예수에 대한 공동 대응을 상징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안티파스가 예수 처형의 공동 판결자였다고 단정하는 것도 부정확하다. 누가복음에서조차 그는 예수를 죽이라고 선고하지 않고 빌라도에게 돌려보낸다. 최종 판결과 십자가형 집행은 빌라도와 로마 병력의 권한 아래 이루어진다.

자료 상태: 예수가 안티파스 앞에서 심문받았다는 장면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된다. 안티파스가 예수의 십자가형을 법적으로 승인했다는 자료는 없다.

10. 폐위와 유배

안티파스의 말년은 조카 헤롯 아그리파 1세와의 경쟁으로 무너졌다. 칼리굴라 황제가 아그리파에게 왕 칭호와 영토를 주자 헤로디아는 안티파스에게도 왕위를 요구하라고 권했다. 아그리파는 안티파스가 대규모 무기를 비축하고 반역을 꾀한다고 고발했다.

서기 39년 칼리굴라는 안티파스의 영토와 재산을 아그리파에게 넘기고 안티파스를 유배했다. 요세푸스의 두 저작은 유배지를 갈리아의 루그두눔 또는 히스파니아와 연결해 전한다. 정확한 장소와 사망 연도는 확정되지 않는다. 헤로디아는 남편과 함께 유배를 택한 것으로 서술된다.

후대 기독교 전승은 안티파스의 몰락을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벌로 해석했지만,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로마 궁정 정치와 왕가 내부 경쟁이다. 그는 로마가 만들어 준 권력으로 수십 년을 통치했고, 같은 로마 황제의 결정으로 제거되었다.


III. 본디오 빌라도

11. 가이사랴의 로마 장관

본디오 빌라도는 서기 26년경부터 36년 또는 37년까지 유대를 통치했다. 그의 주된 행정 거점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이사랴 마리티마(지중해 연안의 로마식 항구 도시)였다. 서기 6년 유대가 로마 직할령이 된 뒤 가이사랴는 총독 관저와 군사 지휘의 중심이 되었다.

유월절과 같은 대규모 절기에는 빌라도가 병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예루살렘은 종교 중심지였지만 동시에 반란 가능성이 집중되는 장소였다. 총독은 안토니아 요새나 헤롯 궁전 같은 시설을 이용했을 수 있다. 복음서가 말하는 프라이토리온(로마 총독의 관저 또는 군사 본부)의 정확한 위치는 논쟁적이다.

빌라도는 단순한 재판관이 아니었다. 그는 군사 지휘, 세금 징수 감독, 치안, 황제 명령 집행, 중대한 형사 사건의 판결을 맡았다. 로마 시민이 아닌 속주민에 대한 강압적 처벌에서 그의 재량은 넓었다.

12. 빌라도 비문과 직함

1961년 가이사랴 극장 지역에서 발견된 석회암 비문은 빌라도의 이름과 직함을 보존한다. 빌라도 비문(가이사랴에서 발견되어 빌라도의 이름과 직함을 보존한 석회암 비문)에는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폰티우스 필라투스”와 “유대의 프라이펙투스”라는 글자가 읽힌다.

프라이펙투스(군사·행정 권한을 가진 로마의 장관 또는 지휘관 칭호)는 빌라도 시대의 공식 직함이었다. 타키투스는 2세기 초 기록에서 빌라도를 프로쿠라토르(황제 재산과 속주 행정을 담당한 로마 관리 칭호)라고 부른다. 후대에 유대 총독의 직함이 프로쿠라토르로 바뀐 행정 현실을 소급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비문은 빌라도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의 통치가 로마 황제 숭배와 도시 건축 환경에 연결되었음을 보여 준다. 비문에 언급된 티베리움의 정확한 성격은 논쟁적이지만, 빌라도가 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념하는 건축물 또는 시설을 봉헌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13. 필론과 요세푸스의 강압적 총독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헬레니즘 철학과 유대교 전통을 결합한 1세기 저술가)은 《가이우스에게 보낸 사절》에서 빌라도의 황금 방패 사건을 기록한다. 빌라도는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에 황제를 기리는 도금 방패를 설치했다. 형상은 없었지만 이름과 봉헌 문구가 유대 지도층의 반발을 불렀다.

필론의 서술에서 빌라도는 완고하고 잔인하며 뇌물·폭력·재판 없는 처형을 일삼는 인물이다. 유대 지도층이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호소하자 황제는 방패를 가이사랴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필론은 이 사건을 칼리굴라의 성전 모독 계획과 대조하기 위해 사용했으므로 그의 수사적 목적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필론의 빌라도는 복음서의 우유부단한 재판관과 크게 다르다. 필론에게 그는 유대인의 종교 감정을 세심하게 존중한 인물이 아니라, 충돌을 자초하고 황제에게까지 질책받은 총독이다.

요세푸스는 빌라도가 황제 형상이 달린 군기를 밤에 예루살렘으로 들여왔고, 유대인들이 가이사랴까지 찾아가 항의했다고 기록한다. 빌라도는 군인들로 포위해 죽이겠다고 위협했으나, 항의자들이 목을 내놓고 율법을 어기느니 죽겠다고 하자 군기를 철수했다.

또 다른 사건에서 빌라도는 성전 금고의 자금을 예루살렘 수로 건설에 사용했다. 군중이 항의하자 사복을 입힌 군인들을 투입하여 몽둥이로 진압했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이 사건은 빌라도가 공공사업을 추진했다는 사실과, 반발을 군사적으로 억압했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 준다.

마지막에는 사마리아인 집단이 그리심산에 모이자 병력을 보내 진압했다. 사마리아 지도자들은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에게 항의했고, 빌라도는 로마로 소환되어 황제 앞에서 해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로마에 도착하기 전 티베리우스가 사망했다. 이후 빌라도의 행적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는다.

14. 강압적 총독과 우유부단한 재판관

필론과 요세푸스의 빌라도는 민감한 종교·정치 문제에서 충돌을 피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상징물을 강행하고, 성전 자금을 전용하며,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반면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무죄를 알아보면서도 제사장 지도층과 군중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이 점차 강화된다.

복음서가 집필된 시기도 중요하다. 마가복음은 유대 전쟁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 전후의 환경에서, 마태·누가·요한복음은 로마 제국 안에서 유대교 회당과 예수 공동체의 관계가 변화하던 시기에 작성되었다. 로마 권력과 직접 충돌하는 인상을 줄이는 한편, 공동체가 갈등하던 유대 지도층의 책임을 확대하는 서사적 경향이 생겼을 수 있다.

자료 상태: 필론과 요세푸스의 빌라도는 반복적으로 충돌과 폭력을 사용한 총독이다. 복음서의 무죄 선언과 주저하는 태도는 역사적 기억 위에 각 저자의 변증적·문학적 목적이 결합된 것으로 검토해야 한다.

15. “유대인의 왕”이라는 혐의

빌라도가 예수에게 묻는 핵심 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이다. 이 표현은 유대 내부의 신학 논쟁이 아니라 로마가 이해할 수 있는 정치 언어이다. 로마 제국에서 왕 칭호는 황제의 승인과 연결되었고, 승인받지 않은 왕권 주장은 반역 가능성을 뜻했다.

예수의 “신의 아들” 주장이나 성전 논쟁이 제사장 지도층에게 종교적으로 문제였더라도, 로마 총독에게 사형을 요구하려면 치안과 왕권 문제로 번역할 필요가 있었다. 누가복음은 예수가 백성을 선동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신을 왕이라 한다는 고발을 명시한다. 예수가 실제로 세금 거부를 선동했다는 점은 복음서 내 다른 전승과 충돌하지만, 고발이 정치적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성전 사건도 중요하다. 예수가 환전상과 판매자들의 활동을 중단시키는 상징 행동을 했다면, 유월절 군중 속에서 성전 질서를 흔드는 예언적 시위로 보였을 수 있다. 규모가 작았더라도 성전 파괴를 암시하는 발언과 왕국 선포가 결합되면 로마와 제사장 지도층 모두에게 위험 신호가 되었다.

16. 마가복음의 빌라도

마가복음에서 빌라도는 예수에게 왕권 질문을 하고, 제사장들의 고발을 들으며, 예수가 대답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 그는 제사장들이 질투로 예수를 넘겼다는 것을 안다고 서술되지만, 군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채찍질한 뒤 십자가형에 넘긴다.

마가의 빌라도는 완전히 무죄한 인물도, 적극적으로 예수를 구하려는 영웅도 아니다. 그는 군중과 지역 지도층을 관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현실 정치가에 가깝다. “군중을 만족시키려 했다”는 설명은 그의 결정이 법적 진실보다 질서 유지와 정치적 편의를 따른 것으로 제시한다.

이 서사는 빌라도의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바라바를 풀고 예수를 채찍질하며 로마 처형대에 넘긴 사람은 빌라도이다. 다만 마가는 제사장 지도층과 군중의 요구를 강조하여 책임을 분산한다.

17. 마태복음의 손 씻기

마태복음은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꾸고 “그 의로운 사람”과 관계하지 말라고 전한 장면을 추가한다. 빌라도는 소요가 일어날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은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다고 선언한다. 군중은 그 피를 자신들과 자손에게 돌리라고 답한다.

손 씻기는 유대 성서 전통에서 무죄를 선언하는 상징 행위와 연결된다. 그러나 로마 총독이 실제 법정에서 손 씻기로 사형 명령의 책임을 제거할 수는 없다. 명령권자가 형 집행을 승인한 이상 법적·정치적 책임은 남는다. 이 장면은 행정 절차보다 마태복음의 “무죄한 피” 주제를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18. 누가복음의 반복되는 무죄 선언

누가복음의 빌라도는 예수에게 죄를 찾지 못했다고 여러 차례 말한다. 그는 예수를 안티파스에게 보내고, 안티파스도 사형에 해당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며 돌려보냈다고 설명한다. 빌라도는 예수를 징계한 뒤 놓아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군중은 바라바를 요구한다.

누가의 관심은 예수 운동이 로마 질서를 본질적으로 위협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다. 사도행전에서도 로마 관리들은 때때로 선교사들에게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는 로마 독자를 향한 변증과 공동체의 정치적 자기 설명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도 빌라도는 최종 판결을 내린다. 그는 군중의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결정하고 예수를 그들의 뜻에 넘긴다. 반복되는 무죄 선언은 빌라도의 책임을 법적으로 지우기보다, 무죄를 알면서도 처형한 모순을 더 크게 만든다.

19. 요한복음의 왕권과 진리

요한복음은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를 크게 확장한다. 예수는 자신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빌라도는 관저 안과 밖을 오가며 예수와 제사장 지도층 사이를 중재한다.

이 장면은 요한복음의 위와 아래, 진리와 세상, 하늘의 권한과 지상의 권한이라는 주제를 압축한다. 빌라도는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반복해서 무죄를 선언한다. 동시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고집하여 제사장 지도층을 모욕한다. 그는 수동적인 희생자라기보다 로마 권력을 이용해 피지배 집단을 조롱하는 인물이다.

20. 점차 완화되는 빌라도의 책임

네 복음서를 시간 순서대로 비교하면 빌라도가 점차 더 무죄를 선언하고 더 오래 저항하는 인물로 발전하는 경향이 보인다. 마가복음에서는 군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처형을 승인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손을 씻고 군중이 피 책임을 떠맡는다. 누가복음에서는 빌라도와 헤롯이 모두 무죄를 확인한다. 요한복음에서는 긴 대화와 반복된 협상 끝에 지도층의 정치적 압박에 굴복한다.

그러나 그 문학적 과정이 역사적 책임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동정적이었는지와 별개로, 사형 선고와 집행 명령은 그의 권한 아래 있었다. 손을 씻는 서사가 법적 책임을 제거하지 못한다.

21. 채찍질·군인 조롱·죄패

복음서에서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한 뒤 십자가형에 넘긴다. 로마의 채찍질은 가죽끈과 금속·뼛조각이 사용될 수 있는 가혹한 신체형이었다. 모든 지역과 시기에 동일한 도구가 쓰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처형 전 채찍질이 피고인을 약화하고 공개적으로 굴복시키는 행위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군인들은 예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며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한다. 이는 개인적 장난만이 아니라 로마 군사 문화가 피지배자의 왕권 주장을 어떻게 모욕했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가짜 왕관, 가짜 경례, 폭행은 제국 권력 앞에서 지역 왕권이 무력하다는 시연이었다.

군인들의 정확한 수, 부대, 민족적 출신은 알 수 없다. 유대 주둔군에는 이탈리아 출신 군단병뿐 아니라 사마리아·시리아 지역의 보조군 병력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을 모두 “로마인”이라고 부를 때는 시민적 출신보다 로마 군사 체제의 집행자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십자가형은 로마가 노예, 반란자, 무장 강도, 낮은 지위의 속주민에게 사용한 공개적 사형이었다. 목적은 단순히 생명을 끊는 데 있지 않았다. 신체를 노출하고 행렬과 조롱을 동반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지배 질서에 도전한 결과를 보여 주는 정치적 공연이었다.

예수의 죄패는 복음서마다 문구가 조금 다르지만 “유대인의 왕”이라는 핵심은 공통이다. 이는 처형 이유가 신성모독이 아니라 로마가 처벌하는 왕권 도전으로 제시되었음을 보여 준다. 요한복음은 빌라도가 히브리어·라틴어·그리스어로 명패를 쓰게 했다고 전한다. 세 언어의 정확한 역사성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공개 처벌의 메시지가 여러 집단에게 전달되었다는 문학적 효과를 낸다.

빌라도가 “내가 쓸 것을 썼다”고 말하는 요한복음의 장면은 그의 주권적 결정과 제사장 지도층에 대한 조롱을 동시에 드러낸다. 예수는 왕권 주장 때문에 처형되지만, 명패는 역설적으로 복음서 독자에게 그의 왕권을 선포하는 표지가 된다.

22. 최종 법적·군사적 책임

로마 장관은 이우스 글라디이(‘칼의 권리’, 속주에서 중대한 사형 판결과 집행을 할 권한)를 행사했다. 유대 당국이 제한된 범위에서 자체 처벌을 시행한 사례가 있었더라도, 십자가형 부대를 동원하고 로마식 죄패를 붙여 공개 처형하는 권한은 총독에게 속했다.

예수 사건에서 제사장 지도층이 체포와 고발을 주도했을 수 있다. 그러나 빌라도는 단순히 타인의 명령을 전달한 서기가 아니었다. 그는 혐의를 판단하고, 죄수 석방 여부를 결정하며, 채찍질과 십자가형을 승인하고, 군인에게 피고인을 넘겼다. 로마 국가권력의 대표자로서 처형의 최종 책임을 진다.

타키투스는 2세기 초 《연대기》에서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 시대에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극형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그는 빌라도의 직함을 후대식으로 프로쿠라토르라고 부르지만, 예수 처형을 로마 행정관과 연결한다. 이 기록은 복음서의 세부를 확인해 주지는 않으나 로마 처형이라는 골격과 부합한다.

자료 상태: 빌라도가 예수의 십자가형을 승인하고 로마 병력이 집행했다는 핵심은 네 복음서와 타키투스의 기록에 부합한다. 빌라도의 무죄 선언과 망설임의 정도는 복음서별 문학적 발전을 고려해야 한다.

23. 소환과 불확실한 최후

빌라도는 사마리아인 진압 사건 뒤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의 명령으로 로마에 소환되었다. 그가 로마에 도착하기 전 티베리우스가 죽었다. 이후 빌라도가 재판을 받았는지, 은퇴했는지, 처형되었는지는 확정할 자료가 없다.

이 전승들은 1세기 행정 기록이 아니다. 빌라도를 악마화하는 전승과 성인화하는 전승 모두 복음서의 모순된 인물상을 확대한다.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마지막 장면은 로마 소환이며, 그의 죽음은 불명이다.


IV. 바라바

24. 폭동 혐의와 ‘아버지의 아들’

바라바는 네 복음서 모두에서 예수 대신 석방되는 죄수로 등장한다. 마가복음은 그가 폭동 중 살인을 저지른 자들과 함께 투옥되었다고 말한다. 누가복음도 폭동과 살인을 명시한다. 마태복음은 그를 “악명 높은 죄수”라고 부르고, 요한복음은 레스테스라고 부른다.

레스테스를 단순한 절도범으로 번역하면 정치적 맥락이 약해진다. 요세푸스는 같은 계열의 말을 무장 약탈자·산적·반란 집단에 사용한다. 그러나 바라바가 조직화된 젤롯당(서기 66년 전쟁기에 두드러진 급진 저항 세력)의 구성원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젤롯이라는 당파 명칭을 예수 시대의 모든 무장 저항자에게 소급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바라바가 실제 사건의 인물이라면 그는 로마 치안 체제에 의해 구금된 정치·강력범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의 범행 장소, 동료, 재판 상태는 알려지지 않는다. 복음서 밖의 동시대 자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바라바는 아람어 ‘바르 아바’와 연결되어 흔히 “아버지의 아들”로 해석된다. ‘아바’가 일반적인 아버지를 뜻하는지, 개인 이름 또는 존칭인지에는 논쟁이 있다. 따라서 이름 자체가 반드시 상징적 가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복음서 서사에서는 이 이름이 강한 문학적 효과를 낸다. 예수는 신의 아들로 제시되고, 다른 한편에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죄수가 놓인다. 군중은 두 인물 가운데 한 명의 석방을 요구한다. 이 대조는 바라바 전승이 역사적 사건을 보존하더라도 복음서 저자들이 상징적으로 재구성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바라바를 예수의 분신, 대속의 상징, 악한 메시아로 해석하는 후대 설교는 역사적 전기와 다르다. 이름의 어원과 서사적 대조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바라바 자신의 의도나 신앙을 추론할 자료는 없다.

25. 일부 사본의 ‘예수 바라바’

마태복음 27장 일부 그리스어 사본은 바라바를 “예수 바라바”라고 부른다. 이 독법을 따르면 빌라도의 질문은 “예수 바라바와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 중 누구를 풀어 주랴”가 된다. 예수라는 이름은 1세기 유대 사회에서 드물지 않았으므로 역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본문비평(여러 사본의 차이를 비교해 가능한 초기 본문을 재구성하는 연구)에서는 두 방향이 논의된다. 필사자들이 죄수에게 예수라는 거룩한 이름이 붙은 것을 불편하게 여겨 삭제했을 수 있다. 반대로 두 예수의 대조를 강화하려고 후대 필사자가 이름을 첨가했을 수도 있다.

고대 교부 오리게네스는 일부 사본의 “예수 바라바”를 알고 있었지만, 죄인에게 예수라는 이름이 붙는 것을 부적절하게 여겼다. 이는 삭제 동기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현재 자료만으로 “예수 바라바”를 확정된 원문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다.

자료 상태: ‘예수 바라바’는 실제 사본에 존재하는 중요한 독법이지만 모든 사본에 공통되지 않는다. 필사 과정에서 삭제되었는지 첨가되었는지는 논쟁 중이다.

26. 유월절 사면 관습

복음서는 유월절마다 총독이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한 명을 놓아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례적 유월절 사면이 요세푸스·필론·로마 법률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부 자료의 침묵만으로 사건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잘 확립된 제도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로마 총독과 황제에게 사면·감형·석방 권한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역 축제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특별 석방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면 권한과 “매년 유월절에 군중이 죄수를 선택하는 관습”은 다른 주장이다.

더구나 폭동과 살인 혐의자를 민감한 유월절에 군중 요구로 풀어 주는 것은 치안 논리와 긴장된다. 빌라도가 강압적 총독이었다는 외부 자료와도 쉽게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자는 실제 일회성 석방의 기억이 관습으로 확대되었다고 보고, 다른 연구자는 바라바 장면 전체가 문학적 대조라고 본다.

27. 실제 사건인가 문학적 대조인가

바라바 이야기가 네 복음서에 모두 있다는 점은 전승의 이른 형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마태·누가가 마가복음을 사용했고 요한복음도 공통 수난 전승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네 문서가 완전히 독립된 네 증언은 아니다.

실제 사건설은 빌라도가 특정 군중을 달래기 위해 한 죄수를 석방했을 수 있다고 본다. 총독의 재량과 정치적 거래는 충분히 가능하다. 예수와 바라바가 같은 시기에 구금되어 있었고, 빌라도가 한 사람을 선택적으로 처분했을 수 있다.

28. 선택한 군중은 누구였는가

복음서의 “군중”을 예루살렘 주민 전체, 유월절 순례객 전체, 당시 유대인 전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 빌라도 관저 앞에 실제로 모일 수 있었던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제사장 지도층이 동원한 지지자, 특정 죄수의 석방을 요구한 집단,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섞였을 수 있다.

며칠 전 예수를 환영한 군중과 재판 장면의 군중이 동일하다는 보장도 없다. 복음서는 군중의 구성원을 명단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고대 도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장소에서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마태복음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라는 문구를 모든 유대인의 영구적 자기 저주로 해석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설령 어떤 군중이 실제로 처형을 요구했더라도, 그 책임은 그 집단과 사건의 범위를 넘어 후대 유대인에게 상속되지 않는다.

29. 사라진 석방자

바라바는 석방 이후 정경 문헌에서 사라진다. 그가 다시 체포되었는지, 반란에 참여했는지, 개종했는지, 자연사했는지 알 수 없다. 그의 최후를 서술하는 전승은 대부분 소설·영화·설교적 상상에 속한다.

역사학에서 바라바는 이름·혐의·석방 장면 외에는 거의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빈 전기는 오히려 수난 서사가 한 개인의 생애보다 예수의 무죄와 군중·빌라도의 선택을 강조하기 위해 그를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자료 상태: 유월절의 정례 사면 관습은 복음서 밖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바라바의 석방 이후 행적과 사망은 알 수 없다.


V. 이름 없는 로마 백부장

30. 처형 현장의 지휘관과 마가의 고백

백부장은 로마 군사 조직에서 중간 지휘를 맡은 장교였다. 라틴어 켄투리오에서 유래한 명칭 때문에 정확히 백 명을 지휘한 사람으로 단순화되지만, 실제 병력 규모는 시대·부대·상황에 따라 달랐다. 백부장은 전투 지휘뿐 아니라 경비·호송·처형 감독을 맡을 수 있었다.

예수의 십자가형이 로마 군사 집행이었다면 현장에 책임 장교가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피고인 호송, 처형 도구 관리, 경비, 사망 확인, 시신 인도 보고에는 지휘 체계가 필요했다. 따라서 이름 없는 백부장의 존재 자체는 역사적으로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복음서가 전하는 특정 고백이 실제 장교의 말인지, 저자가 로마 이방인의 입을 통해 예수의 정체를 선언하게 한 것인지는 별도 문제다. 존재 가능성과 발언의 역사성을 구분해야 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숨을 거둘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다. 예수 맞은편에 서 있던 백부장은 그가 그렇게 죽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신의 아들이었다”고 말한다. 마가복음 서두에서 독자는 이미 예수를 신의 아들로 소개받지만, 서사 안의 인간 인물이 십자가 아래에서 이 칭호를 분명하게 말하는 장면은 특별한 위치를 가진다.

그리스어 표현에는 정관사가 없어 “신의 아들” 또는 “한 신의 아들”로 번역할 가능성이 논의된다. 로마 장교가 유대교·기독교의 완전한 신학적 의미를 이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로마 세계에서 황제·영웅·특별한 인물을 신의 아들이라 부르는 언어도 존재했다.

마가의 독자에게는 로마 처형자가 처형된 예수의 정체를 역설적으로 인정하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황제 권력의 군인이 십자가에 달린 자를 신의 아들이라 부르는 것은 제국 칭호를 뒤집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회심 선언인지, 놀라움과 경외의 표현인지, 문학적 아이러니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31. 마태복음의 백부장과 병사들

마태복음은 마가의 장면을 확장한다. 예수의 죽음과 함께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가 갈라지며 무덤이 열린다. 백부장뿐 아니라 함께 예수를 지키던 병사들이 이 사건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며 그가 신의 아들이었다고 말한다.

마가복음의 단독 장교 고백이 마태복음에서는 집단 증언으로 바뀐다. 고백의 계기는 예수의 죽는 방식만이 아니라 지진과 초자연적 표징이다. 이는 마태복음이 예수의 죽음을 우주적 사건으로 묘사하는 문학적 확대와 연결된다.

지진과 열린 무덤을 외부 사료로 확인할 수는 없다. 백부장과 병사들의 집단 고백 역시 독립된 역사 기록이 아니라 마가복음 전승의 재구성이다. 마태복음이 이방 군인들을 긍정적으로 그린다고 해서 로마의 처형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32. 누가복음의 “의로운 사람”

누가복음에서 백부장은 신을 찬양하며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신의 아들”이라는 마가의 표현이 “의로운 사람”으로 바뀐 점은 중요하다. 누가는 수난 서사 전체에서 예수의 무죄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누가의 백부장은 형이 집행된 뒤 로마 측에서 예수의 무죄를 확인하는 마지막 증인처럼 기능한다. 빌라도가 죄를 찾지 못하고, 헤롯도 사형 사유를 찾지 못하며, 십자가의 범죄자도 예수의 무죄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처형 현장의 장교가 의로움을 인정한다.

“의로운”은 도덕적 선량함뿐 아니라 무죄한 사람이라는 법적 뉘앙스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누가의 변화는 예수의 신적 정체보다 정치적·사법적 무죄를 전면에 놓는 편집으로 볼 수 있다.

33. 요한복음의 침묵과 창병

요한복음에는 십자가 아래 백부장의 고백이 없다. 대신 군인들이 예수의 옷을 나누고, 다리를 꺾을지 결정하며, 한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다. 피와 물이 나왔다는 장면은 목격 증언 형식으로 강조된다.

이 병사는 이름이 없고 계급도 제시되지 않는다. 그가 백부장이었다는 말도 없다. 후대 전승은 그에게 롱기누스(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병사에게 후대 전승이 붙인 이름)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가의 백부장과 요한의 창병을 하나의 인물로 합쳤다.

그러나 두 인물의 동일성은 정경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한쪽은 예수의 죽음을 보고 고백한 지휘관이고, 다른 한쪽은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 창을 사용한 이름 없는 병사이다. 후대 성인전은 이 차이를 지운다.

34. 고백의 역사성과 문학적 기능

네 복음서의 비교는 백부장의 발언이 고정된 역사적 문구로 전승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 마가복음은 백부장이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기록한다.
  • 마태복음은 백부장뿐 아니라 함께 지키던 병사들이 지진과 사건을 보고 같은 고백을 했다고 확장한다.
  • 누가복음은 백부장의 말을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로 바꾼다.
  • 요한복음은 같은 고백을 전하지 않으며 옆구리를 찌른 이름 없는 병사를 배치한다.

실제 장교가 예수의 죽음에 어떤 반응을 보였다는 기억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복음서별 차이는 각 저자가 이 인물을 신학적 결론의 전달자로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마가는 역설적 신의 아들 선언, 마태는 우주적 표징의 집단 증언, 누가는 무죄 확인, 요한은 사망과 증언의 확실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백부장을 “최초의 이방인 신자”로 단정하는 것은 자료를 넘어선다. 마가복음 안에도 이미 이방인 인물들이 예수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백부장이 세례를 받거나 공동체에 합류했다는 기록은 없다.

35. 롱기누스와 고넬료 전승

롱기누스라는 이름은 요한복음의 창을 뜻하는 그리스어 ‘롱케’와 관련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후대 문헌과 미술은 롱기누스를 시력이 회복된 병사, 개종자, 수도자, 순교자, 성인으로 발전시켰다. 지역마다 그의 출신지와 최후가 다르게 전해진다.

또 다른 전승은 백부장을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와 동일시한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한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으로, 베드로를 통해 세례받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모두 로마 백부장이라는 점 외에 동일인임을 입증할 자료는 없다.

백부장, 창병, 고넬료를 하나의 인물로 합치는 과정은 익명 인물에게 이름과 완결된 성인전을 부여하려는 후대의 경향을 보여 준다. 역사 연구에서는 세 전승을 분리해야 한다.

자료 상태: 십자가형 현장에 로마 지휘관이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그의 정확한 고백, 개종, 이름, 출신, 순교는 복음서의 문학과 후대 전승을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


VI. 로마의 처형 체제

36. 십자가형이라는 제국의 형벌

십자가형은 로마만이 발명한 형벌은 아니었지만, 로마 제국은 이를 광범위한 통치 기술로 발전시켰다. 노예 반란, 무장 약탈, 반역, 탈영, 속주 저항을 처벌하는 데 사용되었다. 로마 시민은 일반적으로 보호를 받았지만, 낮은 지위의 속주민에게는 굴욕과 고통을 극대화하는 형벌이 적용될 수 있었다.

십자가형은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국가의 공개 처벌이었다. 복음서가 이후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더라도, 역사적 현장에서 로마가 전달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왕을 자처하거나 질서를 흔드는 속주민의 몸은 제국 권력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37. 호송·십자가 운반·못 박기

복음서는 예수가 처형 장소로 끌려갔다고 기록한다. 마가·마태·누가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다고 말하고, 요한복음은 예수가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나갔다고 서술한다. 실제 로마 관행에서는 사형수가 전체 십자가보다 가로 들보를 운반했을 가능성이 자주 제기되지만, 지역과 사건마다 방식이 같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호송 행렬은 처형의 일부였다. 피고인은 도시 공간을 지나며 공개적으로 조롱받고, 죄패가 혐의를 알렸다. 이는 사법 절차의 비공개 종결이 아니라 통치 메시지의 공개 전달이었다.

시몬의 역할이 역사적 기억인지, 제자도의 상징으로 편집된 것인지는 논쟁적이다. 그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되는 마가복음의 구체성은 초기 공동체가 그의 가족을 알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확정할 수는 없다.

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전제하지만, 손과 발의 구체적 위치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고대 십자가형은 못을 사용하기도 하고 밧줄로 묶기도 했으며 두 방식을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요한복음의 도마 장면은 예수의 손에 못 자국이 있었다는 전승을 반영한다.

예루살렘 인근 무덤에서 발견된 여호하난의 발꿈치뼈에는 철못이 박혀 있어 1세기 유대 지역에서 못을 사용한 십자가형이 실제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한 사례로 모든 처형의 자세·못 개수·십자가 형태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38. 경비와 사망 확인

처형대는 사형수가 죽을 때까지 감시했다. 도주 방지뿐 아니라 시신 처리와 상부 보고도 군인의 임무였다. 마가복음에서 아리마대 요셉이 시신을 요청하자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는지 놀라 백부장을 불러 확인한다. 백부장의 보고 뒤 시신이 인도된다.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이 안식일 전에 시신을 치우기 위해 다리를 꺾어 달라고 요청한다. 군인들은 두 죄수의 다리를 꺾지만 예수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는다. 한 병사가 옆구리를 찌른다. 이는 예수의 실제 죽음과 성서 성취를 동시에 강조하는 요한의 서사이다.

로마가 항상 십자가형 시신을 장기간 방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역자에게 매장을 거부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지방 관습·절기·총독 재량에 따라 유족이나 관계자에게 인도될 수 있었다. 시신 인도와 개별 무덤 매장 가능성은 제10회에서 다룬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

39. 제사장 지도층과 로마 병력의 역할

예수의 체포는 제사장 지도층의 하급자와 무장 집단이 관여한 것으로 복음서에 나타난다. 성전 귀족은 예수의 성전 행동과 군중 영향력을 위험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들은 예수를 심문하고 로마 총독에게 고발하는 과정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십자가형을 집행한 것은 로마 병력이었다. 채찍질, 군사 조롱, 처형장 호송, 못 박기 또는 결박, 죄패 부착, 경비, 사망 확인은 로마 군사 절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제사장 지도층이 로마를 움직이려 했다는 것과 로마가 주권적 판단을 했다는 것은 동시에 성립한다.

이 구조를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는 문장으로 축약하면 가야파 가문과 특정 지도층, 제한된 군중, 로마 총독과 군인, 후대 유대 민족 전체가 하나로 섞인다. 역사적 책임은 행위자와 권한에 따라 분해해야 한다.

40. 책임 이동의 문학적 배경

복음서의 수난 서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빌라도의 무죄 선언을 늘리고 유대 지도층과 군중의 압박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로마 제국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가 자신들을 정치적 반란 집단과 구분하려는 필요와 관련될 수 있다. 또한 예수 공동체와 다른 유대 집단 사이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내부 논쟁의 언어가 외부 집단에 대한 비난으로 굳어졌을 수 있다.

초기 예수 운동 자체가 유대교 내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의 가족, 열두 제자, 여성 추종자,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는 모두 유대인이었다. 복음서의 “유대인들” 또는 “군중”이라는 표현을 기독교 대 유대교라는 후대의 완성된 종교 구도로 읽으면 1세기 내부 갈등이 왜곡된다.

로마의 책임 완화는 제국 권력에 대한 변증적 전략이었을 수 있지만, 그 결과는 후대에 심각했다. 빌라도는 거의 무죄한 관찰자로, 유대인은 집단적 신 살해자로 재현되었다. 문학적 책임 배분이 역사적·사회적 박해의 언어로 전환된 것이다.

41.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마태복음 27장 25절은 기독교 반유대주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하게 사용된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특정 서사 속 군중의 말이 모든 시대의 유대인에게 적용되는 영구적 저주로 해석되었다. 중세 수난극, 설교, 유혈 비방, 폭동과 박해는 이 구절을 반복적으로 이용했다.

본문 안에서도 이 말은 빌라도가 실제 책임에서 벗어났다는 법적 문서가 아니다. 총독은 군중의 선언으로 자신의 명령권과 사형 집행 책임을 양도할 수 없다. 또한 자손에게 죄가 유전된다는 해석은 다른 성서 전통의 개인 책임 원칙과도 충돌한다.

현대 역사 연구는 이 구절의 형성 배경과 후대 수용을 분리한다. 마태 공동체의 내부 갈등과 “무죄한 피”라는 문학적 주제를 분석할 수 있지만, 그 문구를 실제 유대 민족의 집단 선언이나 역사적 계약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42. 네 인물의 책임 위치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의 통치자였고 세례 요한을 처형했다. 그는 예수 운동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예수의 최종 처형을 명령했다는 기록은 없다. 누가복음의 심문 장면에서도 그는 조롱한 뒤 빌라도에게 돌려보낸다.

빌라도는 유대의 로마 장관으로 예수에게 정치적 혐의를 판단하고 십자가형을 승인했다. 복음서가 그의 주저함을 얼마나 강조하든 최종 법적·군사적 책임자는 빌라도이다. 바라바는 석방을 통해 예수와 대비되지만, 사건의 결정권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백부장은 집행 현장의 지휘자였으며 정책 결정자가 아니라 로마 명령을 실행한 군사 책임자였다.

이 네 사람을 같은 수준의 “예수를 죽인 자”로 놓을 수 없다. 지역 통치자, 사형 승인자, 석방된 죄수, 집행 지휘관은 서로 다른 권력과 책임을 가진다. 역사적 분석은 도덕적 악인 목록이 아니라 권한의 사슬을 복원해야 한다.


역사적 평가

예수 처형에 관해 확실성이 높은 사실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를 통치할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가형을 당했다. 십자가형은 로마의 형벌이었고, 로마 병력이 집행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는 왕권 주장 또는 반역 가능성이 로마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혐의였음을 보여 준다. 예수의 체포와 고발에는 예루살렘 제사장 지도층이 관여했을 개연성이 높다.

가능성이 높지만 확정하기 어려운 판단도 있다. 성전 사건과 왕국 선포가 제사장 지도층과 빌라도에게 치안 위협으로 해석되었을 수 있다. 안티파스가 갈릴리의 예수 운동을 감시했을 수 있으며, 빌라도가 유월절 소요를 피하기 위해 신속하게 처형을 승인했을 수 있다. 십자가형 현장에 백부장급 지휘관이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역사적으로 더 불확실한 부분은 복음서의 세부 장면이다. 예수가 안티파스에게 이송된 일은 누가복음에만 나타난다. 빌라도가 여러 차례 무죄를 선언하고 손을 씻었다는 장면은 복음서의 책임 배분과 무죄 주제를 반영할 수 있다. 유월절마다 군중이 죄수 한 명을 선택해 석방했다는 정례 관습은 외부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백부장의 고백 문구는 복음서마다 다르다.

후대 전승은 역사적 근거가 가장 약하다. 안티파스가 예수 때문에 초자연적 벌을 받았다는 해석, 빌라도와 아내의 개종·성인 전승, 바라바의 회심과 이후 생애, 백부장을 롱기누스나 고넬료와 동일시하는 이야기는 1세기 자료가 아니다.

인물 비교적 확실한 사실 논쟁적 판단 후대 전승
헤롯 안티파스 갈릴리·페레아 통치, 세례 요한 처형, 서기 39년 폐위 예수를 직접 심문했는지 여부 예수 처형의 공동 주모자, 초자연적 벌
본디오 빌라도 유대 장관, 예수의 십자가형 승인, 로마 소환 재판 대화와 반복적 무죄 선언의 역사성 개종·자살·순교·성인 전승
바라바 네 복음서의 석방 죄수 전승 유월절 사면, ‘예수 바라바’ 초기 독법, 실제 범죄 성격 회심·대리 죽음·후일담
로마 백부장 처형 현장 지휘관의 존재 가능성 고백의 실제 문구와 의미 롱기누스·고넬료 동일인, 개종·순교

복음서별 빌라도 묘사도 구분해야 한다.

자료 빌라도의 묘사
마가복음 군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넘김
마태복음 손을 씻어 무죄를 선언하지만 처형을 승인함
누가복음 반복해서 무죄를 선언하고 헤롯에게 보낸 뒤 군중 요구를 승인함
요한복음 예수와 긴 대화를 나누고 지도층의 압박을 받지만 최종 선고함
필론·요세푸스 종교·정치적 충돌을 반복하고 폭력을 사용한 로마 통치자
역사적 판단 십자가형의 최종 승인자이며 로마 국가권력의 대표자

예수 처형의 책임 구조는 한 민족의 집단적 죄가 아니라 구체적인 권력 관계로 설명해야 한다. 제사장 지도층은 체포·심문·고발에 관여했을 수 있다. 빌라도는 사형을 승인했다. 로마 군인은 채찍질과 십자가형을 집행했다. 제한된 군중이 처형 요구에 참여했을 수 있다. 그러나 후대 유대인에게 책임이 유전된다는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

헤롯 안티파스, 빌라도, 바라바, 백부장은 예수의 최후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안티파스는 갈릴리의 지역 통치와 세례 요한 탄압을 대표한다. 빌라도는 제국의 법적·군사적 결정권을 대표한다. 바라바는 수난 서사가 선택과 대조를 구성하는 인물이다. 백부장은 국가 폭력이 현장에서 실행되는 지점을 대표한다. 네 인물을 함께 보면 예수의 죽음은 개인적 배신이나 종교 논쟁만이 아니라, 지역 엘리트와 제국 행정과 군사 처형이 이어진 사건이었다.

최종적으로 가장 간결하면서도 역사적으로 덜 왜곡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예루살렘 제사장 지도층의 고발을 거쳐 본디오 빌라도의 명령 아래 로마 병력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했다. 로마 국가권력이 가진 최종 처형 책임을 흐리지 않는다.


참고 문헌

1차 문헌

  • 신약성서: 마가복음 6장·8장·1415장, 마태복음 14장·27장, 누가복음 3장·9장·13장·23장, 요한복음 1819장의 관련 본문.
  • 바울, 고린도전서 2장·15장과 로마서의 십자가형 관련 언급.
  • Flavius Josephus, Jewish Antiquities, Books 17–18.
  • Flavius Josephus, The Jewish War, Books 2 and 5.
  • Philo of Alexandria, Legatio ad Gaium 299–305.
  • Tacitus, Annals 15.44.
  • Caesarea Maritima의 본디오 빌라도 비문.
  • 마태복음 27장 16~17절의 ‘예수 바라바’ 사본 독법.
  • Origen, Commentary on Matthew의 바라바 본문 관련 대목.
  • 《니고데모복음》·《빌라도 행전》과 롱기누스 관련 후대 전승.

현대 연구 및 학술 개요

  • Helen K. Bond, Pontius Pilate in History and Interpret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 Helen K. Bond, “Dating the Death of Jesus: Memory and the Religious Imagination.” New Testament Studies 59, 2013.
  • John Granger Cook, Crucifixion in the Mediterranean World. Mohr Siebeck, 2014.
  • Raymond E. Brown, The Death of the Messiah. Doubleday, 1994.
  • Paula Fredriksen, Jesus of Nazareth, King of the Jews. Vintage, 2000.
  • E. P. Sanders, The Historical Figure of Jesus. Penguin, 1993.
  • Amy-Jill Levine, The Misunderstood Jew. HarperOne, 2006.
  • Joan E. Taylor, The Immerser: John the Baptist within Second Temple Judaism. Eerdmans, 1997.
  • Morten Hørning Jensen, Herod Antipas in Galilee. Mohr Siebeck, 2006.
  • Warren Carter, Pontius Pilate: Portraits of a Roman Governor. Liturgical Press, 2003.
  • Catherine Sider Hamilton, The Death of Jesus in Matthew: Innocent Blood and the End of Exi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 Adele Reinhartz, Cast Out of the Covenant: Jews and Anti-Judaism in the Gospel of John. Lexington Books, 2018.
  • Jeremy L. Williams, Criminalization in Acts of the Apostl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
  •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Bible Odyssey의 본디오 빌라도·십자가형 관련 학술 개요.
  • Cambridge University Press의 빌라도 재판·수난 서사·반유대주의 관련 연구.
  • Tyndale House의 마태복음 ‘예수 바라바’ 본문비평 개요.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