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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얽힌 38인

예수와 얽힌 38인 - 제6회 기록이 희박한 네 사도

자료 상태: 웹 검색 수행. 신약성서의 사도 명단과 관련 본문, 파피아스·이레나이오스·에우세비오스가 보존한 초기 교회 전승, 《도마복음》·《도마행전》·《아다이 교훈》 등 비정경 문헌, 현대 성서학 연구를 대조하였다. 인물 동일시와 선교·순교 전승은 자료의 작성 시기와 상호 충돌을 함께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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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기록이 희박한 네 사도

마태·도마·알패오의 야고보·다대오

열두 제자의 명단에는 들어가지만 예수와의 개별 관계가 거의 서술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마태는 세리였다는 한 장면과 복음서 저자 전승 때문에 널리 알려졌고, 도마는 부활한 예수를 의심한 제자라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러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에 이르면 정경 문헌은 이름 외에 거의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네 사람에 대한 현재의 대중적 전기는 대부분 이 빈 공간을 2세기 이후의 문헌과 지역 교회 전승으로 채운 결과다.

이 네 사람을 한 장에서 함께 다루는 이유는 단순히 기록량이 적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이름과 신원의 문제가 얽혀 있다. 마태는 레위와 같은 사람인지, 도마의 본명이 유다였는지, 알패오의 야고보가 ‘작은 야고보’ 또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같은 사람인지, 다대오가 ‘야고보의 유다’와 같은 사람인지가 각각 논쟁의 대상이다. 고대에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이나 별칭으로 불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지만, 이름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다른 인물을 합칠 수도 없다.

자료의 불균형도 크다. 마태에 대해서는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복음의 공통 전승을 공유하는 세 복음서)의 부름 장면과 초기 복음서 저자 전승이 남아 있다. 도마는 요한복음에서 비교적 분명한 성격을 부여받고, 시리아와 인도 기독교에서는 광범위한 사도 전승의 중심이 되었다. 반면 알패오의 야고보와 다대오는 사도 명단을 제외하면 정경에서 거의 사라진다. 후대의 선교지와 순교 방식은 지역마다 달라 하나의 생애로 정리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장의 핵심 질문은 네 사람이 실제로 어디에서 활동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완성된 전기처럼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정경에서 확인되는 최소한의 정보, 인물 동일시가 이루어진 과정, 복음서 저자와 사도 이름의 결합,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사도적 기원을 구성한 방식을 구분하는 것이 목적이다.


I. 이름만 남은 사도를 읽는 방법

1. 네 개의 사도 명단

열두 사도의 이름은 마가복음 3장, 마태복음 10장, 누가복음 6장, 사도행전 1장에 나온다. 네 명단은 큰 틀에서 비슷하지만 순서와 일부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다. 베드로·안드레·세베대의 야고보·요한·빌립·바돌로매·마태·도마·알패오의 야고보·시몬·가룟 유다는 반복해서 등장한다. 문제는 열한 번째 인물이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는 다대오가 나오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야고보의 유다’가 나온다.

명단의 순서는 무작위라기보다 일정한 묶음을 보인다. 베드로가 거의 항상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가룟 유다가 마지막에 놓인다. 중간 인물들은 세 개 또는 네 개의 소집단처럼 배열된다. 마태·도마·알패오의 야고보·다대오는 대체로 명단 후반에 배치된다. 이 배열은 실제 조직의 서열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지만, 복음서 저자의 신학적·문학적 편집을 배제할 수 없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개인의 상세 전기보다 중요했을 수 있다. 예수 운동은 특정 인물의 개별 업적을 기록하기보다, 종말론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는 집단을 기억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후대 독자가 기대하는 출생지·직업·선교지·사망 방식이 초기 전승에 보존되지 않은 것은 이상하지 않다.

자료 상태: 네 개의 사도 명단은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확인되지만, 명단의 순서와 다대오의 이름은 일치하지 않는다. 명단만으로 각 인물의 직업·성격·사후 행적을 복원할 수 없다.

2. 이름의 중복과 인물 합치기

1세기 유대 사회에는 시몬·유다·야고보·요셉·요한처럼 반복되는 이름이 많았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동명이인을 구분하려면 아버지 이름, 형제 이름, 출신지, 직업, 별칭이 필요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가룟 유다’, ‘야고보의 유다’ 같은 표현은 이러한 구별 장치다.

그러나 후대 전승은 서로 다른 인물을 합쳐 기억하는 경향도 보였다. 사도 명단의 다대오는 누가복음의 유다와 동일시되었고, 마가복음의 레위는 마태복음에서 마태로 바뀌면서 사도 마태와 결합되었다. 알패오의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 예수의 형제 야고보, 클로파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과 연결되었다. 이런 동일시는 교회 전통 안에서 오래 유지되었지만, 역사학에서는 각 문헌이 실제로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지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인물 합치기에는 실용적 이유가 있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을 하나의 일관된 명단으로 만들고, 각 지역 교회의 창건자를 사도와 연결하며, 정경 문헌의 저자를 예수의 직접 제자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승의 일관성이 역사적 사실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여러 선교지와 사망 전승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해당 인물에 대한 확실한 기억이 일찍 사라졌음을 뜻할 수도 있다.

II. 마태

3. 사도 명단의 마태

마태는 네 사도 명단에 모두 포함된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명단에서는 별도의 설명 없이 이름만 나온다. 마태복음 10장 3절은 그를 ‘세리 마태’라고 부른다. 세리(稅吏, 세금이나 통행세·관세를 징수하던 사람)라는 직업 표시는 사도 명단에서 유일하게 마태에게 붙는다.

‘마태’는 그리스어 마타이오스(Matthaios)로 전해지며,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이름 마타이·맛다티야 계열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대체로 ‘야훼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름의 어원은 인물의 역사적 성격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가 출생 때부터 마태였는지, 예수 운동에 합류한 뒤 이름이 바뀌었는지도 알 수 없다.

마태복음이 사도 명단에서 굳이 ‘세리’를 덧붙인 것은 저자가 독자에게 이 인물을 부름 장면의 세리와 연결시키려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직업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래된 기억을 반영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마태복음 자체의 편집 결과이므로 독립된 두 번째 증언으로 계산할 수 없다.

4. 세관에 앉아 있던 사람

마가복음 2장 13

17절은 예수가 바닷가에서 가르치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따르라고 말했다고 기록한다. 레위는 일어나 예수를 따르고, 뒤이어 그의 집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여러 세리와 죄인이 예수 및 제자들과 함께 식사한다. 누가복음 5장 27

32절도 인물의 이름을 레위라고 하고,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으며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고 확대한다.

마태복음 9장 9~13절은 같은 기본 구조를 사용하지만 인물의 이름을 마태로 바꾼다. 장소는 세관이며, 부름의 명령과 공동 식사, 세리와 죄인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진다. 세 복음서의 문학적 관계를 고려하면 세 개의 독립된 목격담이 아니라,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각각 편집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관은 반드시 오늘날의 국세청 사무실과 같은 기관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스어 텔로니온(telōnion)은 통행세·시장세·물품세를 걷는 징수소를 가리킬 수 있다. 가버나움(갈릴리호 북서쪽의 어업·교통 거점) 부근이었다면 육로와 수로를 오가는 상품, 어획물, 시장 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이나 사용료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본문은 레위가 정확히 누구에게 고용되었고 어떤 세목을 담당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5. 로마의 세금인가 헤롯의 통행세인가

갈릴리는 예수의 공생애 시기에 헤롯 안티파스(로마의 승인을 받아 갈릴리와 페레아를 다스린 분봉왕)의 영지였다. 따라서 가버나움의 징수소가 직접 로마 황제의 세금을 걷는 곳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레위 또는 마태는 안티파스의 행정 아래에서 통행세나 상업세를 징수했을 수 있고, 상위 징세 청부업자의 하급 직원이었을 수도 있다.

로마 제국의 조세 제도에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여러 형태가 공존했다. 공공 수입의 징수권을 개인이나 조합에 맡기는 조세 청부도 있었고, 지방 통치자가 자체 행정망을 운영하기도 했다. 복음서가 사용하는 ‘세리’라는 명칭은 이 복잡한 구조 안의 구체적 지위를 알려주지 않는다. 마태를 거대한 세금 조직의 부유한 책임자 또는 가난한 말단 직원으로 확정할 근거는 없다.

세리는 복음서에서 반복적으로 죄인과 함께 언급된다. 이는 경제적 착취, 이방 권력과의 협력, 정결 규정의 문제, 평판이 나쁜 직업 집단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겹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세리가 실제로 법정 세율 이상을 강탈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다. 누가복음의 삭개오 이야기는 과다 징수 가능성을 전제하지만, 그것을 모든 세리의 보편적 행태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마태 또는 레위가 잔치를 열 수 있었다는 서술은 일정한 재산과 주거 공간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다만 마가복음의 ‘그의 집’이 예수의 집인지 레위의 집인지 문법적으로 논의가 있고, 누가복음은 이를 레위의 집으로 명확히 편집한다. 따라서 잔치 장면 하나로 그의 경제 수준을 확정할 수 없다.

자료 상태: 레위 또는 마태가 세금·통행료 징수와 관련된 인물이었다는 전승은 공관복음에 남아 있다. 구체적 고용주와 재산 수준, 착취 행위 여부는 현재 자료로 판단할 수 없다.

6. 레위와 마태는 같은 사람인가

교회 전통은 대체로 레위와 마태를 같은 사람으로 이해했다. 동일한 위치에 놓인 부름 이야기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레위,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히브리어·아람어 이름과 그리스어·로마식 이름을 함께 사용하는 사례는 1세기에 존재했다. 시몬 베드로, 사울 바울, 요한 마가처럼 복수 이름이 확인되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레위와 마태의 경우 두 이름을 직접 연결하는 문장이 없다. 마가복음은 레위를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부르지만, 사도 명단의 마태에게는 아버지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마가복음 3장의 열두 제자 명단에는 마태가 따로 들어가지만 레위는 없다. 이는 레위가 마태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고, 원래 별개의 제자였던 레위의 부름 이야기가 마태복음에서 사도 마태에게 이전되었음을 뜻할 수도 있다.

마태복음 저자가 왜 레위의 이름을 마태로 바꾸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저자가 자기 공동체의 사도 전승에 맞추어 익명의 세리 제자를 마태와 결합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마가복음이 같은 인물의 다른 이름인 레위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남는다. 두 가설 모두 설명력이 있지만 결정적 증거는 없다.

레위의 아버지 알패오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아버지가 같은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같은 알패오라면 마태와 야고보가 형제일 수 있지만, 복음서는 두 사람을 형제로 부르지 않는다. 알패오라는 이름이 유일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후대의 일부 계보는 이들을 형제로 묶었지만 정경 본문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자료 상태: 마태와 레위의 동일시는 오래된 교회 전통이며 문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가설이다. 그러나 두 이름을 한 사람의 복수 이름으로 명시하는 1세기 자료는 없다.

7. 예수와의 관계와 사라진 행적

마태가 레위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의 예수 추종은 세관에서 시작되었다. 이 부름 장면은 예수가 사회적 평판이 낮은 직업 집단과 식탁을 공유했다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중심은 마태 개인의 심리나 회심 과정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와 식사하고 누구를 공동체에 받아들였는가에 있다.

사도 명단 이후 마태는 정경에서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베드로·요한·야고보처럼 핵심 사건의 증인으로 지명되지 않고, 질문하거나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도 없다. 사도행전 1장의 명단에 이름이 남아 있다는 점은 예수 사후 예루살렘 공동체의 창립 인물로 기억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이후의 선교 활동은 기록되지 않는다.

이 침묵은 마태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없다. 초기 공동체의 기록은 모든 구성원의 활동을 균등하게 보존하지 않았다. 바울의 편지와 사도행전은 특정 논쟁과 선교 노선에 집중한다. 그러나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후대 전승을 역사적 사실처럼 배치해서도 안 된다.

8. 사도 마태와 마태복음 저자

현재의 마태복음 본문은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제목인 ‘마태에 따른 복음’은 본문 자체의 첫 문장이 아니라, 복음서들이 구별되어 유통되는 과정에서 붙은 표제다. 정확히 언제 제목이 고정되었는지는 논쟁적이지만, 2세기 후반에는 마태라는 저자 전승이 분명히 확인된다.

파피아스(2세기 초 소아시아 히에라폴리스의 교회 지도자)의 저술은 소실되었으나, 에우세비오스가 그 일부를 인용한다. 파피아스는 마태가 ‘히브리 방언으로 로기아를 배열했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대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로기아(logia)는 말씀·신탁·기록을 뜻할 수 있으며, 현재의 마태복음 전체를 가리키는지 예수 어록집을 가리키는지 확정되지 않는다. ‘히브리 방언’도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를 뜻할 수 있다.

이레나이오스(2세기 후반 갈리아의 교회 지도자)는 마태가 히브리인들 가운데 그들의 언어로 복음서를 냈다고 서술한다. 오리게네스(3세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신학자)와 에우세비오스도 유사한 전승을 반복한다. 이 계보는 마태 저자설이 상당히 이른 시기에 형성되었음을 보여주지만, 모든 저자가 서로 독립된 정보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현존 마태복음은 자연스러운 그리스어로 작성되었고, 마가복음의 그리스어 본문을 광범위하게 사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다수의 현대 연구자는 현존하는 마태복음을 셈어 원본의 단순 번역으로 보지 않는다. 예수의 직접 제자인 세리가 그리스어를 알았을 가능성 자체는 배제할 수 없지만, 언어 능력의 가능성과 실제 저자임을 증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또한 마태복음은 세리 마태의 부름 장면을 마가복음에서 가져오면서도 1인칭 회고로 바꾸지 않는다. 저자가 자기 경험을 쓰고 있다면 왜 제3자의 이야기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반대로 고대 저자는 자신을 제3인칭으로 서술할 수 있었으므로 이것만으로 저자설을 반박할 수는 없다. 결국 현존 본문만으로 사도 마태 저자설을 확정하거나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현대 비평학에서는 익명의 그리스어 사용 유대계 그리스도인 저자를 상정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자료 상태: 마태 저자 전승은 2세기 초·후반 자료에서 확인된다. 현존 마태복음이 사도 마태의 셈어 저술을 그대로 번역한 문서라는 주장은 본문의 그리스어 문체와 마가복음 의존 관계로 입증하기 어렵다.

9. 선교지와 죽음에 관한 전승

마태의 사후 행적은 지역 전승마다 크게 다르다. 에우세비오스는 사도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고 설명하면서도 마태의 최종 선교지와 죽음을 명확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는 판타이노스(2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의 교사)가 ‘인도’에서 히브리 문자로 된 마태복음을 발견했고 바돌로매가 남겼다는 전승을 소개한다. 여기서 인도는 오늘날 인도아대륙만이 아니라 아라비아 또는 동방의 넓은 지역을 가리킬 수 있다.

후대 문헌은 마태를 에티오피아, 파르티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폰투스 등과 연결한다. 죽음도 칼에 찔림, 화형, 참수, 자연사 등으로 갈린다.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전승이 많다는 것은 확실한 순교 기억이 보존되었다기보다 여러 지역 교회가 사도적 기원을 마태에게 연결했음을 보여준다.

《마태행전》 또는 마태 이름을 붙인 순교담은 정경보다 훨씬 늦고 전설적 요소가 많다. 마태가 세리 출신이었다는 사실과 특정 국가의 창건 사도였다는 주장을 같은 수준의 자료로 다룰 수 없다. 그의 죽음은 현재 자료로 확인할 수 없다.

항목 역사적 판단
이름 사도 명단의 마태는 복수의 초기 문헌에서 확인됨
직업 마태복음은 그를 세리로 명시함
레위와의 동일성 가능하지만 확정되지 않음
예수와의 관계 열두 제자 집단의 구성원
마태복음 저자 2세기 교회 전승에서 명시되나 현대 연구에서는 논쟁적
사후 활동 정경에서 확인되지 않음
죽음 서로 충돌하는 후대 전승만 존재

III. 도마

10. ‘쌍둥이’라는 이름

도마는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의 사도 명단에 이름이 나오지만 개별 행동은 요한복음에서만 서술된다. 그리스어 토마스(Thōmas)는 아람어 테오마(t’oma, 쌍둥이)를 음역한 이름으로 이해된다. 요한복음은 도마를 세 차례 ‘디두모스라고 불리는 도마’라고 설명한다. 디두모스(Didymos)는 그리스어로 역시 쌍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도마’는 본명이라기보다 별칭일 수 있다. 《도마복음》의 서두와 《도마행전》은 그를 ‘유다 도마’ 또는 ‘유다 디두모스 도마’로 부른다. 이 전승에 따르면 본명은 유다이고 도마는 쌍둥이라는 호칭이다. 그러나 정경 요한복음은 그의 본명을 유다라고 하지 않으며, 누구의 쌍둥이인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후대 시리아 전승에서는 도마가 예수의 쌍둥이로 상징화되기도 했다. 이를 생물학적 형제 관계의 역사적 기억으로 볼 근거는 없다. 쌍둥이는 계시를 이해하는 특별한 분신, 예수와 닮은 사도, 영적 대응자라는 문학적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다.

11. 요한복음의 네 장면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가 죽은 라자로를 만나기 위해 유대로 돌아가려 하자 제자들은 위험을 우려한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한다. 이 발언은 용기, 비관, 오해가 뒤섞인 반응으로 읽힌다. 그는 예수를 따르려 하지만 예수가 말하는 죽음과 생명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요한복음 14장의 고별 담화에서 예수가 자신이 가는 길을 제자들이 안다고 말하자, 도마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길을 알겠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 뒤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예수의 답변이 배치된다. 도마의 기능은 신학적 설명을 끌어내는 질문자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도마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자리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도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를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고 말한다. 여드레 뒤 예수가 나타나 상처를 보라고 하자 도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응답한다. 이 고백은 요한복음 전체에서 예수에게 부여되는 가장 높은 칭호 가운데 하나다.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도마가 베드로·나다나엘·세베대의 아들들 등과 함께 갈릴리호의 고기잡이 장면에 등장한다. 이 목록은 그가 부활 전승을 공유한 제자 집단에 포함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이후 행적을 제공하지 않는다.

12. ‘의심 많은 도마’라는 이미지

도마는 흔히 다른 제자보다 믿음이 약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요한복음 20장의 다른 제자들도 예수를 직접 본 뒤에야 기뻐하고 믿는다.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만으로 완전한 확신에 도달했다고 서술되지 않는다. 도마가 요구한 것은 다른 제자들이 이미 경험했다고 주장한 시각적 확인이다.

차이는 도마가 그 요구를 말로 명시한다는 데 있다. 복음서 저자는 도마의 확인 욕구를 통해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라는 후대 독자의 위치를 제시한다. 이 장면은 도마 개인의 심리 보고라기보다, 첫 목격자 세대가 사라진 뒤 공동체가 증언과 기록을 통해 믿음을 전달해야 하는 문제를 다루는 문학적 장치다.

도마가 실제로 예수의 상처에 손을 넣었는지도 본문은 명시하지 않는다. 예수는 손을 내밀라고 말하지만, 도마의 고백은 즉시 이어진다. 후대 미술은 손가락으로 상처를 확인하는 장면을 구체화했으나, 이는 본문의 빈틈을 시각적으로 채운 것이다.

도마의 고백이 역사적 발언으로 그대로 보존되었는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요한복음은 1세기 말 무렵 공동체의 신학적 언어를 반영한다. 다만 도마가 부활 증언을 둘러싼 논쟁적 인물로 일찍 기억되었거나, 도마와 연결된 별도 전승 집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남는다.

자료 상태: 도마의 개별 발언과 행동은 요한복음에 집중된다. ‘의심 많은 도마’라는 통상적 이미지는 요한복음의 문학적 기능을 단순화한 것이다.

13. 도마와 시리아 기독교

도마의 이름은 시리아어권 기독교에서 특별한 권위를 얻었다. 에데사(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 우르파 일대의 고대 도시)는 도마 전승의 주요 중심지였다. 시리아어 문헌은 그를 유다 도마라고 부르며, 예수의 비밀 말씀과 동방 선교를 전달한 사도로 묘사한다.

에우세비오스는 오리게네스에게서 전해진 말이라며 도마가 파르티아(이란 고원을 중심으로 한 고대 왕국)를 선교 구역으로 받았다고 기록한다. 이 기록은 3세기 이전에 도마와 로마 제국 동쪽 지역을 연결하는 전승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도마가 실제로 파르티아에서 활동했다는 동시대 기록은 아니다.

시리아 교회가 도마를 창건 사도로 기억한 것은 지역 공동체의 권위 형성과 관련된다. 사도와 직접 연결된 교회라는 주장은 예루살렘·안티오키아·로마·알렉산드리아 같은 주요 교회와 대등한 기원을 주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도마 전승이 단순한 조작이라는 뜻은 아니다. 동방으로 이동한 초기 선교 네트워크의 기억이 도마라는 이름 아래 집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4. 《도마복음》

《도마복음》은 예수의 행적을 연속적으로 서술하는 전기형 복음서가 아니라, 114개의 말씀을 모은 어록집이다. 완전한 콥트어 사본은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상 이집트에서 초기 기독교·영지주의 문헌 사본들이 발견된 지역)에서 발견되었고, 일부 그리스어 조각은 그보다 앞서 옥시링코스(이집트의 고대 도시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서두는 ‘살아 있는 예수가 말하고 디두모스 유다 도마가 기록한 비밀 말씀’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 문구는 저자가 실제 사도 도마였음을 입증하지 않는다. 고대 종교 문헌이 권위 있는 인물의 이름을 빌리는 위명 저술(실제 저자가 과거의 권위자 이름으로 문서를 쓰는 관행)은 흔했다.

문헌의 연대는 논쟁적이다. 완성된 형태는 대체로 2세기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일부 말씀은 공관복음과 독립된 이른 전승을 보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대로 상당수 말씀은 신약 복음서의 문구와 2세기 신학 논쟁을 알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체 문헌을 1세기의 독립된 예수 말씀 기록으로 보거나, 모든 내용을 늦은 창작으로 처리하는 양극단은 모두 자료의 층위를 단순화한다.

《도마복음》은 도마 개인의 생애를 알려주는 자료가 아니다. 오히려 2세기 일부 기독교 집단이 도마를 비밀 계시의 수령자이자 해석자로 기억했음을 보여준다. 정경 요한복음이 도마를 확인을 요구하는 인물로 만들고, 《도마복음》이 비밀 말씀의 기록자로 내세우는 대비는 서로 다른 공동체가 같은 사도 이름을 두고 권위를 구성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15. 《도마행전》과 인도 선교

《도마행전》은 대체로 3세기 초 시리아어권에서 형성된 외경 사도행전으로 본다. 예수는 인도 상인 합반에게 도마를 목수 노예로 팔고, 도마는 인도 왕 군다포르의 궁전을 짓는 임무를 받는다. 그는 건축비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하늘에 궁전을 지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여러 개종·금욕·기적 이야기가 이어지며, 도마는 왕실 여성들의 결혼생활을 거부하게 했다는 이유로 처형된다.

이 문헌의 군다포르는 인도-파르티아 왕 곤도파레스와 이름이 유사하다. 곤도파레스가 실제 1세기 통치자였다는 사실은 《도마행전》이 완전히 허구의 지명을 사용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왕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도마의 방문 전체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고대 소설과 성인전도 실제 지명과 통치자를 서사에 사용할 수 있다.

《도마행전》의 ‘인도’는 오늘날 국경의 인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고대 지리 용법은 인더스강 동쪽, 남아시아, 때로는 에티오피아와 아라비아를 포함한 먼 동방을 폭넓게 가리켰다. 문헌의 앞부분은 북서 인도와 파르티아권을 연상시키지만, 후대 남인도 전승은 도마를 말라바르 해안과 마일라포르에 연결한다.

인도 남서부의 성 도마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도마가 서기 1세기에 도착해 여러 교회를 세웠다고 전승한다. 이 공동체가 매우 오래된 시리아계 기독교 전통을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현존 자료만으로 창립 시점을 사도 시대까지 직접 소급하기는 어렵다. 인도와 서아시아 사이의 해상 무역망은 1세기에도 존재했으므로 이동 자체는 가능했지만, 가능성과 실제 방문의 증거는 구분해야 한다.

16. 마일라포르의 무덤과 에데사의 유해

남인도 전승은 도마가 오늘날 첸나이의 마일라포르 부근에서 창에 찔려 죽고 그곳에 묻혔다고 말한다. 산토메 대성당과 성 도마산은 이 전승의 중심지다. 그러나 1세기의 매장과 사도를 직접 연결하는 동시대 비문이나 유해 감정은 없다.

한편 시리아 전승은 도마의 유해가 에데사로 옮겨졌다고 말한다. 4세기 이후 에데사는 도마 유물 숭배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일부 유해는 다시 서방으로 이동했다는 전승도 형성되었다. 마일라포르와 에데사의 전승은 유해의 원매장지와 이전을 통해 조정되었지만, 그 이동 경로를 독립 자료로 확인하기 어렵다.

도마가 동방 선교와 연결되었다는 전승은 마태·알패오의 야고보·다대오의 전승보다 이르고 일관된 면이 있다. 오리게네스의 파르티아 전승, 3세기 《도마행전》, 시리아 교회의 도마 숭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방’이라는 넓은 방향성에서 곧바로 1세기 남인도의 구체적 교회 창건과 마일라포르 순교까지 확정할 수는 없다.

항목 역사적 판단
이름 도마는 ‘쌍둥이’를 뜻하는 아람어 별칭으로 보임
본명 유다 비정경 시리아 전승에서 확인되나 정경에는 없음
예수와의 관계 열두 제자이며 요한복음에서 네 장면에 등장
부활 확인 장면 요한복음의 신학적·문학적 구성과 역사 기억이 결합됨
동방 선교 3세기 이전 전승이 있으나 구체적 경로는 불확실
인도 방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직접 입증되지 않음
죽음과 무덤 마일라포르·에데사 전승은 후대 자료에 의존

IV.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17. 명단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인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네 사도 명단에 모두 등장한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아버지 이름이 붙었다. 사도행전 1장에서도 생존한 제자들의 명단에 포함되므로 예수 사후 초기 예루살렘 집단에 남았다고 서술된다.

그러나 이 인물의 말과 행동은 정경 어디에도 없다. 직업·출신지·가족관계·부름 장면도 기록되지 않는다. ‘알패오’라는 아버지 이름만이 유일한 구별 정보다. 알패오가 아람어 할파이 또는 클로파와 언어적으로 관련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름 형태의 유사성만으로 특정 가문을 구성할 수 없다.

마가복음의 레위도 알패오의 아들로 불린다. 두 알패오가 같은 사람이라면 레위와 야고보는 형제일 수 있다. 그러나 복음서는 형제 관계를 말하지 않으며, 세베대의 두 아들이나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함께 부르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는 가능한 추측에 머문다.

자료 상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열두 제자였다는 점 외에는 1세기 자료에서 확인되는 독립 행적이 없다.

18. 신약의 여러 야고보

신약에는 최소한 세 명의 주요 야고보가 등장한다. 첫째는 세베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제로, 헤롯 아그리파 1세에게 처형된다. 둘째는 알패오의 아들로 사도 명단에만 나타난다. 셋째는 예수의 형제로, 예수 사후 예루살렘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고 서기 62년경 처형된 것으로 요세푸스에게도 기록된다.

마가복음 15장 40절은 십자가를 지켜본 여성 가운데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를 언급한다. ‘작은’에 해당하는 미크로스(mikros)는 키가 작다, 나이가 어리다, 덜 알려졌다는 뜻일 수 있다. 이 작은 야고보가 알패오의 아들인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19장 25절에는 예수의 어머니의 자매, 클로파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나온다. 후대 해석은 클로파의 아내 마리아를 마가복음의 야고보 어머니 마리아와 결합하고, 클로파를 알패오와 동일시했다. 그 결과 알패오의 야고보가 작은 야고보가 되고, 때로는 예수의 사촌이 되었다.

이 동일시는 여러 복음서의 여성 명단을 하나의 가족관계로 조립한 결과다. 각 복음서가 같은 여성을 다른 방식으로 부른 것일 수 있지만, 이름이 흔하고 명단의 구조도 다르다. 특히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알패오의 야고보와 합치면, 복음서가 예수의 형제들과 열두 제자를 구별하는 장면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19. ‘작은 야고보’와 ‘주님의 형제’

서방 교회 전통의 일부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를 유지하기 위해 예수의 형제들을 사촌으로 해석했고,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알패오의 야고보와 동일시했다. 반면 동방 교회의 주요 전통은 예수의 형제들을 요셉의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로 보아 두 야고보를 구분했다. 종교 교리와 가족관계 해석이 인물 동일시에 직접 영향을 준 사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9절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다른 사도들과 구별되는 방식으로 언급한다.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서도 부활 현현의 대상인 야고보와 모든 사도를 구분한다. 이 자료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열두 제자 명단의 알패오의 야고보와 다른 인물일 가능성을 높인다.

요세푸스는 대제사장 아나노스가 ‘그리스도라 불린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했다고 기록한다. 그는 알패오나 열두 제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1세기 자료에서 예루살렘 지도자 야고보의 신원은 예수와의 형제 관계로 구별되며,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표지는 없다.

따라서 알패오의 야고보, 작은 야고보,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모두 한 사람으로 보는 전통은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 작은 야고보와 알패오의 야고보의 동일성은 가능성이 남지만, 예수의 형제 야고보까지 포함하는 동일시는 근거가 더 약하다.

20. 선교와 순교 전승

알패오의 야고보에 관한 후대 전승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전승과 자주 섞인다.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린 뒤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는 헤게시포스(2세기 기독교 저술가)가 전한 예루살렘 지도자 야고보의 순교담이다. 이를 알패오의 야고보의 죽음으로 옮기면 서로 다른 인물을 합치는 결과가 된다.

다른 전승은 알패오의 야고보가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 십자가형을 당했거나, 예루살렘에서 돌에 맞거나, 톱에 잘려 죽었다고 말한다. 전승마다 장소와 방식이 달라 공통의 역사 기억을 추출하기 어렵다. 일부 사도 목록과 순교록은 그를 페르시아 또는 아르메니아에 배치하기도 한다.

정경은 그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는다. 가장 이른 외부 자료에서도 그의 사후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순교자 야고보’라는 일반적 이미지가 어느 야고보를 가리키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항목 역사적 판단
신원 알패오의 아들이며 열두 제자 명단에 포함
레위와의 관계 같은 알패오의 아들일 가능성만 있음
작은 야고보와 동일성 가능하지만 입증되지 않음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동일성 1세기 자료의 구분 때문에 가능성이 낮음
사후 행적 확인되는 기록 없음
죽음 다른 야고보의 순교담과 혼합된 후대 전승

V. 다대오와 야고보의 유다

21. 명단에서 바뀌는 이름

마가복음 3장과 마태복음 10장은 열두 제자 가운데 다대오를 넣는다. 누가복음 6장과 사도행전 1장은 같은 위치에 ‘야고보의 유다’를 넣는다. 요한복음 14장에는 가룟 유다가 아닌 유다가 한 차례 질문한다. 교회 전통은 대체로 이 세 이름을 한 사람으로 결합해 ‘유다 다대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표현 이우다스 야코부(Ioudas Iakōbou)는 직역하면 ‘야고보의 유다’다. 생략된 관계어가 아들인지 형제인지 논쟁이 있었으나, 고대 그리스어의 일반적 명명 관습과 누가복음의 다른 사례를 고려하면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번역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일부 오래된 영어 번역은 ‘야고보의 형제 유다’로 옮겼고, 그 결과 유다서 저자와 결합되기 쉬웠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사본에는 다대오 외에 렙배오, ‘다대오라 불리는 렙배오’ 같은 변이가 있다. 필사자들이 서로 다른 사도 명단을 조화시키려 이름을 추가하거나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존하는 이른 사본에서는 다대오가 상대적으로 강한 지지를 받지만, 변이 자체는 이 인물의 신원이 일찍부터 불분명했음을 보여준다.

다대오라는 이름의 어원도 확정되지 않는다. 아람어에서 유래한 애칭 또는 별명으로 보기도 하고, 그리스어권에서 실제 사용된 고유명으로 보기도 한다. 렙배오는 히브리어 ‘마음’과 연결해 설명되어 왔지만, 이는 후대의 상징적 어원 풀이일 가능성이 크다.

자료 상태: 다대오와 야고보의 유다가 같은 사람이라는 해석은 네 사도 명단을 조화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정경 본문이 두 이름의 동일성을 직접 선언하지는 않는다.

22. 가룟 유다가 아닌 유다

요한복음 14장 22절에서 ‘가룟 유다가 아닌 유다’는 예수가 왜 자신을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드러내려 하는지 묻는다. 예수의 답변은 사랑, 계명 준수, 성령의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이 유다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요한복음은 다대오 또는 야고보의 아들이라는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

복음서 저자가 ‘가룟 유다가 아닌’이라는 구별을 넣은 것은 유다라는 이름이 배신자와 자동으로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유다는 1세기 유대 사회에서 흔한 이름이었으며, 마카베오 가문의 유다와 유다 지파의 기억 때문에 긍정적 의미도 강했다. 가룟 유다의 서사가 널리 알려진 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제자를 구별할 필요가 커졌다.

요한복음의 이 한 장면만으로 유다의 성격이나 사역을 복원할 수 없다. 질문은 도마와 빌립의 질문처럼 고별 담화의 설명을 확장하는 문학적 기능을 한다. 그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이 질문을 했는지는 역사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23. 유다서 저자와 예수의 형제 유다

신약 유다서는 저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소개한다. 예수의 형제 명단에는 야고보와 유다가 함께 나오므로, 유다서 저자를 예수의 형제 유다로 보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반면 그를 열두 제자의 유다 다대오와 동일시하는 전통도 존재한다.

그러나 유다서는 자신을 사도라고 부르지 않는다. 17절에서 독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표현은 저자가 자신을 사도 집단과 구별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따라서 유다서 저자와 다대오를 같은 사람으로 볼 근거는 강하지 않다.

유다서의 세련된 그리스어와 유대 묵시문학 사용은 실제 예수의 형제가 직접 썼는지에 대한 논쟁을 낳았다. 교육받은 필경사나 공동 저술의 가능성도 있으므로 언어만으로 저자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헌의 작성 시기와 위명 가능성을 검토해야 하며, 서두의 자기소개를 곧바로 역사적 신원 확인으로 사용할 수 없다.

결국 최소 세 인물이 구별되어야 한다. 가룟 유다, 예수의 형제이자 유다서와 연결된 유다, 열두 제자 명단의 야고보의 유다 또는 다대오다. 요한복음의 ‘가룟 유다가 아닌 유다’가 세 번째 인물일 가능성은 높지만 확정적이지 않다.

24. 에데사·아브가르·아다이 전승

다대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후대 전승은 에데사 왕 아브가르와 연결된다. 에우세비오스는 아브가르가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에게 편지를 보냈고, 예수가 승천 뒤 제자를 보내겠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후 도마가 일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다대오를 에데사로 보내 왕을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게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다대오는 열두 사도의 다대오라고 명시되지 않는다. 에우세비오스는 그를 ‘일흔 가운데 하나’로 구분한다. 시리아어 《아다이 교훈》(에데사의 사도 아다이 전승을 담은 후기 고대 문헌)에서는 파견자의 이름이 아다이로 나타난다. 아다이는 시리아어권에서 다대오와 연결되었고, 후대에는 열두 사도의 유다 다대오와 합쳐졌다.

예수와 아브가르의 편지는 역사적 진본으로 보기 어렵다. 초기 기독교 문헌과 로마·시리아의 동시대 기록에는 나오지 않으며, 에데사 왕국의 기독교화 시기와 교회 권위 형성이라는 후대 상황을 반영한다. 이야기의 목적은 에데사 교회가 예수 자신의 약속과 사도 파견에서 시작되었다는 계보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에데사 전승은 다시 성상 전승과 결합했다. 예수의 얼굴이 찍힌 천, 이른바 에데사의 성상 또는 만딜리온(천에 남은 예수 얼굴 형상으로 숭배된 성물)이 아브가르에게 전달되었다는 이야기가 발전했다. 에우세비오스의 초기 형태에는 후대와 같은 완성된 성상 이야기가 없다. 이는 하나의 사도 전승이 치유 서신, 도시 창건 신화, 성물 숭배로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료 상태: 에우세비오스가 전한 에데사 이야기의 다대오는 열두 사도와 구별되는 일흔 제자다. 유다 다대오·아다이·에데사의 다대오의 동일시는 후대 전승의 결합이다.

25. 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의 순교 전승

아르메니아 교회는 다대오와 바돌로매를 초기 복음 전파의 사도로 기념한다. 다대오는 아르메니아 왕가의 인물을 개종시키고 왕의 명령으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이란 북서부의 성 다대오 수도원도 이 전승과 연결된다.

다른 전승은 다대오가 시몬과 함께 페르시아에서 선교하다 곤봉·도끼·창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레바논의 베이루트, 메소포타미아, 유대, 사마리아, 리비아 등도 선교지로 제시된다. 시몬과 유다가 함께 축일을 갖게 된 것은 두 사도의 결합 전승을 강화했다.

이러한 전승은 대부분 구체적 1세기 자료가 아니라 후기 순교록과 지역 교회 문헌에 의존한다. 사망 도구도 도끼, 곤봉, 창 등으로 달라 성인 도상의 상징이 되었다. 다대오의 실제 죽음은 알 수 없다.

그가 절망적 사건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숭배된 현상은 훨씬 후대의 서방 가톨릭 신심사에 속한다. 이름이 가룟 유다와 같아 오랫동안 기도가 기피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운 청원을 맡는 성인이 되었다는 설명이 전해진다. 이는 1세기 인물의 행적이 아니라 후대 종교문화가 이름의 기억을 재구성한 사례다.

항목 역사적 판단
정경 명칭 마가·마태의 다대오와 누가·사도행전의 야고보의 유다
두 이름의 동일성 가장 일반적인 조화 가설이나 직접 증명은 없음
요한복음의 유다 같은 인물일 가능성이 있으나 추가 신원 정보 없음
유다서 저자 다대오와 동일시하기 어려움
에데사 선교 아다이·일흔 제자 다대오와 열두 사도가 후대에 혼합됨
아르메니아·페르시아 선교 지역 교회의 후대 전승
죽음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음

VI. 기록의 침묵과 전승의 팽창

26. 네 인물의 자료 비교

인물 정경에서 확인되는 핵심 초기 교회 전승 외경·지역 전승 역사적 한계
마태 열두 제자, 마태복음에서는 세리 파피아스·이레나이오스의 저자 전승 에티오피아·페르시아 등 여러 선교지 레위 동일성·복음서 저자·죽음 모두 논쟁적
도마 열두 제자, 요한복음의 질문과 부활 장면 파르티아 선교 전승 《도마복음》·《도마행전》·인도 교회 전승 동방 방향성은 이르지만 구체적 인도 행적은 입증 곤란
알패오의 야고보 사도 명단의 이름 거의 없음 이집트·페르시아·예루살렘 순교담 다른 야고보들의 전승과 혼합됨
다대오 사도 명단, 야고보의 유다와 대응 에데사 전승의 다른 다대오와 연결 아르메니아·페르시아 선교와 순교 아다이·유다서 저자·예수의 형제 유다와 혼합됨

네 사람의 전승은 기록이 적을수록 단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잡해졌다. 구체적 1세기 정보가 없기 때문에 여러 공동체가 자신의 기원과 필요에 맞추어 인물을 재배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는 복음서 저자가 되었고, 도마는 비밀 계시와 인도 선교의 사도가 되었으며, 알패오의 야고보는 다른 야고보들과 합쳐졌고, 다대오는 에데사와 아르메니아의 창건 전승에 편입되었다.

27. 열두 제자 안에서의 의미

마태가 세리 출신이었다는 전승이 사실이라면, 열두 제자 집단은 어업 종사자뿐 아니라 통치 체제의 수입 징수에 관여한 사람도 포함한 셈이다. 이는 예수 운동이 단일한 경제 계층이나 정치 성향으로 구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열심당원 시몬과 세리 마태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정치적 인물이었다는 설교식 대비는 두 사람의 실제 정치 행적을 알 수 없다는 점을 무시한다.

도마는 요한복음에서 질문하고 확인하는 제자의 역할을 맡는다. 그는 단순한 회의주의자가 아니라 죽음에 동행하겠다고 말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질문하며, 마지막에는 높은 고백을 하는 인물이다. 그의 문학적 기능은 신앙과 증언의 관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알패오의 야고보와 다대오의 침묵은 열두 제자 전승의 성격을 보여준다. ‘열둘’은 모든 구성원의 상세 전기를 보존한 행정 명부가 아니었다. 일부 이름은 집단의 상징적 완결성을 위해 보존되었고, 개인의 기억은 빠르게 약해졌다. 후대 교회는 이 불균형을 견디기보다 각 사도에게 선교지와 순교를 배정했다.

이 네 사람의 사례는 정경과 외경을 단순히 사실과 거짓으로 나눌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경도 문학적 편집과 저자 공동체의 신학을 담고 있으며, 외경도 해당 문헌이 만들어진 지역과 시대의 기억을 알려준다. 다만 외경이 2~4세기 공동체의 도마 이해를 알려준다는 사실과, 1세기 도마의 실제 여행을 입증한다는 주장은 서로 다르다.

역사적 평가

비교적 확실한 사실은 제한적이다. 마태·도마·알패오의 야고보는 여러 사도 명단에서 반복되며, 다대오 또는 야고보의 유다도 열두 제자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마태는 세리 전승과 연결되고, 도마는 요한복음에서 독립된 인물로 발전한다. 네 사람 모두 예수 사후 공동체의 창립 세대를 상징하는 사도 명단 안에 남았다.

가능성이 높지만 확정되지 않은 판단도 있다. 마태와 레위는 같은 부름 이야기의 주인공이므로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으나, 마태복음의 편집으로 두 인물이 결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대오와 야고보의 유다는 서로 다른 사도 명단의 같은 자리를 차지하므로 동일인으로 보는 설명이 가장 경제적이지만, 문헌이 이를 직접 확인하지 않는다. 도마가 동방 선교 전승과 일찍 연결된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이동 범위는 알 수 없다.

역사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전승은 훨씬 많다. 사도 마태가 현존 마태복음을 직접 썼다는 주장, 도마가 서기 1세기 남인도에 일곱 교회를 세웠다는 구체적 전승, 알패오의 야고보가 특정 방식으로 순교했다는 이야기, 다대오가 아브가르 왕을 고치고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는 각각 2세기 이후의 문헌과 지역 전승에 의존한다. 전승의 오래된 신앙적 중요성과 역사적 입증력은 구분해야 한다.

네 사람은 예수 운동의 사회 구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마태는 경제 행정과 주변화된 직업 집단의 편입을, 도마는 증언의 전달과 동방 기독교의 독자적 사도 기억을, 알패오의 야고보는 집단 명단 속에서 개인 기억이 소멸하는 과정을, 다대오는 서로 다른 이름과 지역 전승이 하나의 성인 전기로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이들의 역사적 의미는 완전한 생애를 복원하는 데 있지 않다. 기록의 침묵이 어떻게 저자 전승, 비밀 계시, 선교 신화, 순교 전설로 바뀌었는지를 추적할 때, 초기 기독교가 사도의 권위를 생산하고 지역 교회의 기원을 설명한 방식을 볼 수 있다.

참고 문헌

1차 문헌

  • 신약성서: 마태복음 9:913; 10:24, 마가복음 2:1317; 3:1319; 15:40, 누가복음 5:2732; 6:1216, 요한복음 11:16; 14:57; 14:2224; 20:2429; 21:2, 사도행전 1:13, 갈라디아서 1:1819, 고린도전서 15:38, 유다서 125.
  • Flavius Josephus, Jewish Antiquities, Book 20.
  • Irenaeus, Against Heresies, 3.1.1.
  •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1.13; 3.1; 3.24; 3.39; 5.10; 6.25.
  • Papias of Hierapolis, fragments preserved in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3.39.
  • Gospel of Thomas.
  • Acts of Thomas.
  • Doctrine of Addai.

현대 연구 및 학술 개요

  • John P. Meier, A Marginal Jew: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Volume 3: Companions and Competitors, Yale University Press.
  •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J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T&T Clark.
  • Ulrich Luz, Matthew, Hermeneia, Fortress Press.
  • Raymond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XIII–XXI, Anchor Bible.
  • Michael J. Kok, Tax Collector to Gospel Writer: Patristic Traditions about the Evangelist Matthew, Fortress Press.
  • Richard Valantasis, The Gospel of Thomas, Routledge.
  • A. F. J. Klijn, The Acts of Thomas: Introduction, Text, and Commentary, Brill.
  • Susan E. Myers, Spirit Epicleses in the Acts of Thomas, Mohr Siebeck.
  •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Bible Odyssey, “The Apostle Matthew,” “Thomas,” “Was the Gospel of Thomas Gnostic?” 및 비정경 문헌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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