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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38

예수와 얽힌 38인 - 제5회 두 번째 갈릴리 제자 집단

자료 상태: 웹 검색 수행. 신약성서 본문, 이레네우스·에우세비오스가 보존한 2~4세기 교회 전승, 외경 사도행전, 히에라폴리스의 고고학 자료, 현대 요한문헌 연구를 대조하였다. 요한·빌립·바돌로매의 동일인 판정과 순교 전승은 자료 시기와 상호 충돌을 함께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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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두 번째 갈릴리 제자 집단

요한·빌립·바돌로매

요한·빌립·바돌로매는 열두 제자 명단에서 나란히 등장하지만, 세 사람에게 남은 기록의 양과 성격은 크게 다르다. 세베대의 아들 요한은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며, 2세기 이후에는 제4복음서·요한서신·요한계시록의 권위까지 한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반면 빌립은 요한복음에서 여러 차례 개별 대화를 나누지만 공관복음에서는 이름만 확인된다. 바돌로매는 정경 전체에서 독립된 말이나 행동이 한 번도 기록되지 않는다.

복음서는 제자들의 전기를 수집한 문헌이 아니라 예수의 활동과 죽음을 특정한 신학적·서사적 관점에서 배열한 문헌이다. 어떤 인물이 말하는 장면이 많다는 사실은 그가 역사적으로 더 큰 역할을 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해당 복음서 저자가 그 인물을 문학적 장치로 활용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특히 요한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여러 인물이 하나의 전통적 초상으로 합쳐졌다. 세베대의 아들 요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는 요한, 바울이 예루살렘 공동체의 ‘기둥’이라고 부른 요한, 제4복음서의 ‘예수가 사랑한 제자’, 제4복음서의 저자, 요한서신의 저자, 밧모섬의 묵시가 요한은 문헌상 자동으로 동일인이 되지 않는다. 교회 전승은 이들을 대체로 한 사람으로 통합했지만, 역사 연구에서는 각각의 동일성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빌립과 바돌로매에게서는 반대 문제가 나타난다. 기록이 부족하자 후대 공동체는 서로 다른 인물을 합치거나 넓은 선교 지역을 배정하였다. 사도 빌립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전도자 빌립과 혼동되었고, 바돌로매는 요한복음의 나다나엘과 동일시되었다. 두 동일시는 이해 가능한 추론이지만 정경 본문이 직접 확인해 주는 사실은 아니다.

이 장의 핵심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세 사람은 예수 생전에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둘째, 예수 사후에 확인 가능한 활동은 어디까지인가. 셋째, 정경 기록이 끝난 뒤 형성된 선교·순교·저술 전승 가운데 어느 부분이 초기 기억을 보존하고 어느 부분이 지역 교회의 권위를 만들기 위한 후대 구성인가.


I. 세 사람을 묶는 명단과 갈릴리 배경

1. 열두 제자 명단의 배열

열두 제자의 이름은 마가복음 3장, 마태복음 10장, 누가복음 6장, 사도행전 1장에 나타난다. 네 명단은 구성원이 거의 같지만 배열은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베드로는 언제나 첫머리에 놓이고, 가룟 유다는 복음서 명단에서 마지막에 놓인다. 그 사이의 배열은 일정한 소집단을 어느 정도 보존하면서도 문헌마다 달라진다.

마가복음은 베드로, 세베대의 야고보, 요한 다음에 안드레를 놓고 이어서 빌립과 바돌로매를 기록한다. 마태복음은 형제 쌍을 강조하여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먼저 배열한 뒤 빌립과 바돌로매를 붙인다. 누가복음도 빌립과 바돌로매를 연속해서 기록한다.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요한·야고보·안드레 다음에 빌립·도마·바돌로매·마태가 이어진다.

이 배열은 열두 제자가 완전히 평면적인 집단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베드로·야고보·요한은 여러 장면에서 별도의 핵심 집단으로 나타난다. 빌립과 바돌로매는 명단상 인접하지만 공관복음에서 공동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명단의 인접성을 곧바로 일상적인 동료 관계나 선교조로 해석할 수는 없다.

열둘이라는 수는 개인 전기의 정확한 보존보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집단 정체성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룟 유다의 이탈 뒤 사도행전이 맛디아를 선출하여 수를 복구하는 장면도 이 상징성을 보여 준다. 명단은 실제 인물들의 기억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초기 공동체가 자신의 기원을 ‘복원된 이스라엘’로 설명하는 장치였다.

자료 상태: 요한·빌립·바돌로매가 열두 제자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점은 복수의 초기 문헌에서 확인된다. 명단의 순서와 소집단 배열은 문헌마다 다르며, 배열만으로 실제 친밀도나 선교조를 확정할 수 없다.

2. 갈릴리 출신이라는 공통점과 한계

요한은 갈릴리호에서 세베대와 형 야고보와 함께 어업에 종사한 인물로 묘사된다. 빌립은 요한복음에서 벳새다(갈릴리호 북동쪽에 있던 어업·농업 취락으로 위치와 행정 경계가 논쟁적인 도시) 출신이라고 명시된다. 바돌로매의 출신지는 정경에 기록되지 않는다. 그를 나다나엘과 동일시할 경우 가나(갈릴리의 마을로 정확한 위치가 논쟁적)와 연결되지만, 이 동일시 자체가 확정되지 않는다.

세 사람 모두 갈릴리 출신이었다고 흔히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확실성은 서로 다르다. 요한과 빌립은 갈릴리 지역과 직접 연결된다. 바돌로매는 열두 제자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갈릴리 활동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으나, 출생지와 직업은 알 수 없다.

갈릴리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 주민이 다수를 이루면서도 그리스어 지명과 행정 문화가 공존한 지역이었다. ‘빌립’은 그리스어 필리포스(Philippos,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식 이름)에서 온 이름이다. 그러나 그리스식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빌립이 헬레니즘 교육을 받았거나 그리스계였다고 판단할 수 없다. 1세기 유대인 가운데 그리스식 이름을 사용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요한의 이름은 히브리어·아람어 계열의 요하난(Yohanan, ‘야훼가 은혜를 베풀었다’는 뜻)에서 왔다. 바돌로매는 개인 이름이라기보다 아람어 ‘바르 톨마이’(Bar-Talmai, 톨마이의 아들)에서 온 부칭(父稱, 아버지의 이름으로 개인을 구분하는 명칭)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돌로매에게는 별도의 개인 이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경은 이를 전하지 않는다.


II. 세베대의 아들 요한

3. 세베대 가문의 아들과 어업 종사자

마가복음은 예수가 갈릴리호 주변에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부르는 장면을 기록한다. 두 사람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고, 아버지 세베대는 고용인들과 함께 배에 남는다. 이 짧은 기록은 세베대 가문이 단독 노동자 한두 명으로 이루어진 최하층 가구가 아니라 배·그물·가족 노동·고용 노동을 결합한 어업 단위였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고용인’이라는 단어만으로 세베대를 부유한 선주나 지역 유지로 확대할 수는 없다. 계절성 노동이나 일시적 품팔이도 가능했다. 반대로 예수의 제자들이 모두 아무 재산도 없는 극빈층이었다는 통속적 이미지 역시 본문보다 강한 단정이다. 요한의 사회적 위치는 생계형 어업 가구의 구성원이었으나 일정한 생산 수단과 노동 조직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는 정도로 표현하는 편이 적절하다.

마태복음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를 등장시키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마가복음의 십자가 장면에는 살로메가 등장한다. 두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 전승이 널리 퍼졌지만, 복음서 본문은 이를 직접 확인하지 않는다. 요한의 어머니를 살로메라고 단정하는 것은 복음서 조화(서로 다른 복음서의 인물과 사건을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합치는 해석)의 결과다.

자료 상태: 요한이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이고 갈릴리 어업에 종사했다는 점은 공관복음에서 확인된다. 가문의 정확한 재산 수준, 어머니의 이름, 요한의 연령은 확정할 수 없다.

4. 부름 장면과 핵심 세 제자 집단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베드로·안드레의 부름 직후 야고보·요한의 부름을 배치한다. 두 형제는 아버지와 배를 두고 예수를 따른다. 누가복음은 기적적인 어획 장면을 확대하면서 야고보와 요한을 시몬의 동업자로 소개한다. 이 차이는 네 어부가 서로 연결된 경제적·인적 관계망에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실제 사업 계약의 형태는 알 수 없다.

요한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장면, 변화산 장면, 겟세마네 기도 장면에 동행한다. 이 세 사람은 예수의 활동 가운데 다른 제자들이 배제된 장면에 들어가는 핵심 집단으로 묘사된다. 역사적으로 실제의 우선 집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세 장면 모두 복음서의 기적·계시·수난 서사 안에 놓여 있으므로 세부 대화와 목격 내용까지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의 어부 부름 장면을 기록하지 않는다. 빌립·안드레·베드로·나다나엘의 합류는 서술하지만 세베대의 두 아들은 마지막 장인 21장에서야 집단적으로 언급한다. 이 침묵은 제4복음서가 요한의 전기라는 전통적 관념과 긴장을 이룬다. 저자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라면 자신을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가능한 해석 가운데 하나이지 본문이 밝힌 사실은 아니다.

5. ‘천둥의 아들들’과 권력 지향의 흔적

마가복음은 예수가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아너게(Boanerges, 복음서가 ‘천둥의 아들들’이라고 풀이하는 아람어계 별명)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기록한다. 정확한 원형과 문법은 분명하지 않지만, 복음서 저자는 두 형제의 격렬한 성향을 나타내는 별명으로 이해한 듯하다.

누가복음에는 사마리아(유대와 갈릴리 사이 지역으로 예루살렘 성전과 경쟁하는 그리심산 전통을 가진 공동체) 마을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자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할지 묻는 장면이 있다. 예수는 두 사람을 꾸짖는다. 이 장면은 누가복음에만 나타나며 일부 사본에는 더 긴 책망 문구가 덧붙는다. 실제 발언의 정확한 형태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초기 전승이 두 형제를 온건한 성인으로만 기억하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마가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의 영광 가운데 좌우 자리를 요구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요구의 주체가 두 형제의 어머니로 바뀌지만, 예수의 질문에는 형제들이 직접 답한다. 마태복음의 변화는 존경받는 사도들이 노골적으로 권력을 요구했다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문학적 책임 이동일 가능성이 있다.

이 장면들은 요한을 온화하고 사색적인 인물로만 묘사하는 후대 초상과 다르다. 초기 자료의 요한은 집단의 중심부에 접근하려 하고, 경쟁 공동체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높은 지위를 요구하는 형제 중 한 사람이다. 이러한 불편한 기억이 보존되었다는 점은 전승이 후대의 이상화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6. 마지막 만찬·체포·십자가에서의 부재

공관복음은 최후의 만찬에 열두 제자가 함께했다고 서술하지만 개별 좌석이나 대화 상대를 거의 밝히지 않는다. 요한은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겟세마네에서는 베드로·야고보와 함께 예수 가까이에 머물도록 요청받지만 잠든다. 체포 뒤 제자들은 달아나며, 요한이 재판이나 십자가 현장까지 따라갔다는 공관복음의 기록은 없다.

제4복음서에는 대제사장과 아는 ‘다른 제자’가 베드로를 대제사장의 뜰로 들어가게 하는 장면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 인물을 요한으로 보기도 했으나 본문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갈릴리 어부가 대제사장 가문과 연결되었다는 설명에는 추가 가정이 필요하다. 그 제자가 예루살렘 출신의 별도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십자가 곁에는 ‘예수가 사랑한 제자’가 예수의 어머니와 함께 서 있다. 예수는 어머니와 그 제자에게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말을 한다. 이 인물 역시 요한이라고 명시되지 않는다. 공관복음은 남성 제자들의 현장 참석을 기록하지 않고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성들이 멀리서 지켜보았다고 서술한다. 두 전승은 동일한 장면을 다른 인물 배치로 구성한다.

역사적으로 요한이 십자가 현장에 있었는지는 결정할 수 없다. 제4복음서의 장면은 실제 목격 기억을 반영할 수도 있고, 예수의 가족과 특정 제자 공동체의 결합을 상징하는 문학적 장면일 수도 있다. 이 장면을 근거로 요한이 마리아를 평생 부양했다거나 마리아와 함께 에페소스로 이주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7. 사도행전의 요한과 베드로의 동반자

사도행전에서 요한은 예수 사후 예루살렘 공동체의 중심 인물로 다시 나타난다. 그는 베드로와 함께 성전으로 올라가고, 걷지 못하던 사람의 치유 사건 뒤 성전 당국의 심문을 받는다. 대제사장 집단은 두 사람을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이 표현은 문맹을 정확히 판정한 행정 기록이라기보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사도들과 지도층의 대비를 만드는 누가의 서술일 수 있다.

사도행전의 요한은 독립 지도자라기보다 베드로와 공동 권위를 형성하는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베드로 개인의 행동을 예루살렘 사도 집단의 행위로 확장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8장 이후 요한의 활동은 사실상 사라진다. 야고보의 처형, 베드로의 탈옥,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세베대의 아들 요한은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자료 상태: 예수 사후 요한이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활동했다는 전승은 사도행전에 기록된다. 다만 사도행전은 요한의 독립 연설과 장기 행적을 제공하지 않으며 8장 이후 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는다.

8. 바울이 만난 ‘기둥’ 요한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야고보·게바·요한을 ‘기둥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 편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보다 이른 서기 50년대의 자료이므로, 예수 사후 지도부를 확인하는 데 특별히 중요하다. 바울은 세 사람이 자신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고 자신들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가기로 했다고 서술한다.

여기서 야고보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이고 게바는 베드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한은 별도의 부칭 없이 기록된다. 세베대의 아들 요한으로 보는 해석이 가장 자연스럽지만 바울이 직접 이를 명시하지는 않는다. 당시에 여러 요한이 존재했고, 훗날 파피아스의 전승에는 ‘장로 요한’이라는 별도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베대의 요한은 예수 생전 핵심 제자였고 사도행전에서도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므로, 바울이 언급한 요한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요한은 적어도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시기까지 공동체의 최고 지도부에 있었다. 이는 그를 단지 침묵하는 베드로의 동반자로만 볼 수 없게 한다.

9. 세베대의 요한과 ‘예수가 사랑한 제자’

제4복음서의 ‘예수가 사랑한 제자’는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 곁에 기대어 있고,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어머니를 맡으며, 빈 무덤에서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하고, 갈릴리호에서 부활한 예수를 먼저 알아보는 인물로 묘사된다. 마지막 장은 이 제자가 해당 사건들을 증언하고 기록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제4복음서는 그 제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는 13장 이전에는 이 표현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연결하는 직접 문장도 없다. ‘사랑받는 제자=요한’이라는 동일시는 제4복음서 자체보다 후대 교회 전승에서 분명해진다.

세베대의 요한 동일설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요한은 공관복음의 핵심 세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마지막 만찬에 참여했을 열둘 중 한 사람이다. 제4복음서가 세베대의 요한을 거의 이름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은 저자가 자신을 익명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또한 2세기 말 이레네우스는 예수의 가슴에 기대었던 제자 요한이 에페소스에서 복음서를 썼다고 전한다.

반론도 적지 않다. 제4복음서의 사랑받는 제자는 예루살렘과 대제사장 가문에 익숙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세베대의 요한은 갈릴리 어부로 소개된다. 제4복음서는 열두 제자 제도 자체를 공관복음만큼 강조하지 않으며, 사랑받는 제자를 베드로와 경쟁하거나 보완하는 이상적 증인으로 구성한다. 나사로, 장로 요한, 이름 없는 예루살렘 제자, 문학적 상징 인물 등 여러 후보가 제시되었다.

요한복음 21장은 갈릴리호에 모인 일곱 명 가운데 ‘세베대의 아들들’과 ‘다른 두 제자’를 구분해 열거한 뒤 사랑받는 제자를 등장시킨다. 문법상 사랑받는 제자가 세베대의 아들 중 하나일 가능성도, 이름 없는 두 제자 중 하나일 가능성도 남는다. 이 장만으로 동일성을 확정할 수 없다.

현대 연구에서는 사랑받는 제자가 실제 인물의 기억을 바탕으로 했으나 복음서 안에서 이상적 증인으로 문학화되었다는 견해, 특정 공동체의 권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견해, 순수한 문학적 인물이라는 견해가 병존한다. 세베대의 요한 동일설은 오래된 유력 가설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표시할 수는 없다.

자료 상태: ‘예수가 사랑한 제자’는 제4복음서에만 등장하며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다.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의 동일시는 2세기 교회 전승에서 확고해졌으나, 현대 연구에서는 계속 논쟁 중이다.

10. 제4복음서·요한서신·요한계시록의 저자 문제

제4복음서는 본문 안에서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21장 24절은 사랑받는 제자의 증언과 기록을 언급한 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됨을 안다’고 말한다. 이 복수형은 한 증인의 전승을 공동체나 편집자가 확인하는 문장으로 읽힐 수 있다. 현재 형태의 복음서가 단일 목격자의 즉석 기록이 아니라 전승·집필·편집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요한일서는 저자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저자는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지만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 세 문서는 제4복음서와 어휘와 사상이 가깝지만, 동일한 개인이 모두 썼는지 또는 같은 전승 집단에서 여러 사람이 작성했는지는 논쟁적이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자신을 요한이라고 밝히며 밧모섬(에게해 동부의 작은 섬으로 로마 시대 유배지 전승과 연결됨)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세베대의 아들이나 열두 사도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계시록의 그리스어 문체와 종말론적 이미지, 교회 상황은 제4복음서와 상당히 다르다. 고대에도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이자 성서 해석자)는 두 문헌의 문체 차이를 근거로 저자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2세기 후반 이레네우스는 제4복음서의 저자를 예수의 가슴에 기대었던 제자 요한과 동일시하고 에페소스에서 집필했다고 전한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의 사도들 가운데 요한’이 묵시록을 기록했다고 언급한다. 이 전승은 비교적 이르지만, 문헌 작성 시점과는 수십 년의 간격이 있다.

11. 에페소스 체류 전승과 장로 요한

요한의 후반 생애를 에페소스(로마 제국 아시아 속주의 대도시로 항구·행정·종교 중심지)와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2세기 후반 이레네우스와 에페소스의 주교 폴리크라테스다. 이레네우스는 자신이 어릴 때 들은 폴리카르포스(2세기 스미르나의 주교)의 기억을 매개로 요한이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까지 에페소스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폴리크라테스는 주님의 가슴에 기대었던 증인 요한이 에페소스에 잠들었다고 기록한다.

이 전승은 1세기 말 요한이 소아시아에서 활동했다는 기억이 2세기 후반에 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레네우스의 정보는 요한에게서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최소 한 세대 이상의 전달 과정을 거친다. 또한 그가 ‘주님의 제자 요한’을 세베대의 아들과 명시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해서 두 사람이 반드시 동일한 것도 아니다.

파피아스(2세기 초 히에라폴리스에서 예수 전승을 수집한 교회 지도자)의 서문을 인용한 에우세비오스는 아리스티온과 ‘장로 요한’을 별도로 언급한다. 파피아스의 문장에는 과거형으로 열거된 안드레·베드로·빌립·도마·야고보·요한·마태와, 현재형으로 전하는 아리스티온·장로 요한이 함께 나타난다. 에우세비오스는 이를 근거로 에페소스 지역에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이라는 두 인물이 있었다고 해석했다.

에페소스 체류는 가능성이 있는 초기 전승이지만, 그가 언제 예루살렘을 떠났고 어떤 공동체를 조직했으며 어떤 문헌을 직접 집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에페소스의 요한’이라는 기억과 ‘세베대의 아들 요한’의 전기가 후대에 결합되었을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

12. 밧모섬·도미티아누스 박해·끓는 기름

요한계시록은 저자 요한이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언 때문에’ 밧모섬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공식적인 유배형이었는지, 선교나 피신을 위한 체류였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4세기 에우세비오스는 이레네우스의 연대 해석에 따라 도미티아누스 황제 말기의 박해와 연결하고, 황제 사후 요한이 에페소스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도미티아누스 치하에 제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 기독교 박해가 시행되었다는 전통적 그림은 현대 로마사 연구에서 신중하게 다루어진다. 개별 처벌과 정치적 탄압은 있었지만, 후대 교회사가 묘사한 통일된 박해 정책을 입증하는 자료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황제 명령으로 밧모섬에 유배되었다는 이야기는 계시록의 자기 진술과 후대 연대 구성이 결합된 전승이다.

테르툴리아누스(2~3세기 카르타고의 기독교 저술가)는 요한이 로마에서 끓는 기름에 던져졌으나 해를 입지 않고 섬으로 유배되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신약에 없으며 요한과 동시대 자료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로마의 라틴 문 성당과 축일은 이 전승을 기념하지만 사건의 역사성을 입증하지 않는다.

13. 요한의 죽음과 에페소스 무덤

가장 널리 퍼진 전승은 요한이 에페소스에서 고령으로 자연사했다는 것이다. 이레네우스는 요한이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까지 생존했다고 전하고, 폴리크라테스는 그가 에페소스에 ‘잠들었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기독교 문헌에서 죽음을 뜻하지만 사망 방식은 밝히지 않는다.

외경 《요한 행전》(2세기 후반부터 여러 층위로 형성된 요한 전승 모음)은 요한이 제자들에게 무덤을 파게 한 뒤 그 안에 누워 생을 마치는 장면을 전한다. 후대 전승에서는 시신이 사라졌거나 무덤에서 치유의 먼지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더해졌다. 이는 순교가 아니라 자발적 ‘이행’ 또는 승천에 가까운 죽음으로 요한을 묘사한다.

반대 전승도 있다. 5세기 역사가 필리포스 시데테스의 후대 요약본은 파피아스가 요한과 야고보가 유대인들에게 살해되었다고 썼다고 전한다. 이 자료가 정확하다면 요한도 이른 시기에 순교했을 수 있다. 그러나 파피아스의 원문이 남지 않았고, 파피아스를 직접 읽었던 에우세비오스와 이레네우스가 이 정보를 전하지 않으며, 필리포스의 정확성에도 문제가 지적된다. 따라서 이를 확정적 초기 증언으로 사용할 수 없다.

에페소스 인근 아야술루크 언덕에는 비잔티움 시대의 성 요한 대성당 유적과 무덤으로 숭배된 구조물이 남아 있다. 고고학은 늦어도 후기 고대에 이곳이 요한 숭배의 중심지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봉헌 성당과 순례 전통의 존재는 무덤 속 인물이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라는 생물학적·역사적 확인과 다르다. 유골의 신원을 검증할 연속적 자료는 없다.

항목 역사적 판단
출신과 직업 세베대의 아들이며 갈릴리 어업 가구 구성원으로 공관복음에서 확인
예수와의 관계 베드로·야고보와 함께 핵심 제자 집단에 속함
예수 사후 행적 예루살렘·사마리아 활동은 사도행전, 지도자 지위는 갈라디아서에서 확인 가능
사랑받는 제자 세베대의 요한과 동일시되어 왔으나 본문은 이름을 밝히지 않음
요한문헌 저술 전통적 귀속은 강하지만 단일 저자설은 역사적으로 확정되지 않음
에페소스 체류 2세기 후반 전승에서 분명하며 초기 기억을 보존했을 가능성 있음
죽음 자연사·순교·신비적 이행 전승이 충돌하며 정경 기록 없음
무덤 후기 고대의 숭배 장소는 확인되나 유해의 신원은 확인 불가

III. 빌립

14. 벳새다 출신과 직접 부름 전승

공관복음에서 빌립은 열두 제자 명단에만 등장한다. 그의 출신지·직업·부름 과정·발언은 기록되지 않는다. 반면 요한복음은 예수가 갈릴리로 가려 하면서 빌립을 만나 직접 ‘나를 따르라’고 말한 것으로 서술한다. 이어 빌립이 안드레와 베드로의 도시인 벳새다 출신이라고 밝힌다.

이 장면은 요한복음의 초기 제자 형성 방식과 관련된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에게서 예수에게 옮겨가 베드로를 데려오고, 빌립은 예수의 직접 부름을 받은 뒤 나다나엘을 찾아간다. 제자는 개인적으로 부름받는 동시에 자신의 관계망을 통해 다른 사람을 연결한다. 빌립은 복음서 안에서 예수와 나다나엘 사이의 중개자로 처음 기능한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이 기록한 사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찾았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요한복음 저자의 신학적 요약일 가능성이 크며, 역사적 빌립이 정확히 같은 문구를 사용했다고 검증할 수 없다. 그러나 빌립이 예수 운동 초기의 연결자였다는 독립 전승이 있었을 가능성은 남는다.

벳새다는 베드로·안드레·빌립 세 사람의 고향으로 기록된다. 그렇다고 세 사람이 모두 같은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예수를 알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공관복음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갈릴리호의 어부로 부르고 빌립을 언급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안드레가 먼저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고 서술하며 빌립을 별도로 부른다. 두 전승은 제자 집단의 형성을 서로 다른 구조로 설명한다.

자료 상태: 빌립이 열두 제자였다는 점은 모든 제자 명단에서 확인된다. 벳새다 출신과 직접 부름 장면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며 공관복음에는 그의 개별 행적이 없다.

15. 나다나엘을 데려온 중개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빌립은 논쟁으로 설득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답한다. 요한복음에서 이 표현은 증언을 통해 사람을 예수에게 인도하는 방식의 핵심 문구다. 빌립은 자신이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는 교사가 아니라 직접 만남을 연결하는 중개자로 묘사된다.

이 장면 때문에 빌립과 나다나엘의 관계가 공관복음의 빌립과 바돌로매 배열과 결합되었다. 공관복음에서 빌립 옆에 바돌로매가 놓이고, 요한복음에서 빌립 옆에 나다나엘이 놓이므로 두 이름이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추론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나다나엘을 ‘바돌로매’라고 부르지 않고, 공관복음은 바돌로매가 빌립의 소개로 합류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16. 오병이어 장면의 빌립

요한복음의 오병이어 장면에서 예수는 많은 사람을 먹일 방법을 빌립에게 묻는다. 복음서는 예수가 이미 무엇을 할지 알고 있었으며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했다고 해설한다.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로마 은화 데나리우스 200개로 노동자의 상당 기간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계산한다.

공관복음에서 제자들은 군중을 마을로 보내 먹을 것을 사게 하자고 제안하지만 빌립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익명의 제자 대화를 빌립과 안드레의 개별 발언으로 바꾸었다. 빌립은 비용을 계산하는 현실적 인물, 안드레는 소년의 보리빵과 물고기를 발견하지만 그 양을 의심하는 인물로 배치된다.

17. 그리스인들의 접근과 빌립의 그리스식 이름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려 온 일부 그리스인들이 빌립에게 예수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도 요한복음에만 있다. 빌립은 혼자 결정하지 않고 안드레에게 가며, 두 사람이 함께 예수에게 알린다. 그리스인들이 왜 빌립을 선택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빌립의 그리스식 이름과 벳새다의 다문화 환경 때문에 그가 그리스어를 구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자주 제시된다. 가능성은 있지만 이름만으로 언어 능력을 입증할 수 없다. 안드레 역시 그리스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복음서 저자는 두 사람을 이방 세계가 예수에게 접근하는 통로로 문학적으로 배치했을 수 있다.

18. 마지막 만찬의 질문

요한복음의 고별 담화에서 빌립은 예수에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는 자신을 본 사람이 아버지를 보았다고 답한다. 도마가 길을 묻고,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며, 가룟 유다가 아닌 유다가 계시의 범위를 묻는 구조는 제자들의 질문을 통해 복음서의 핵심 주장을 설명하는 문학적 방식이다.

빌립의 질문은 무지나 둔감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가 제기할 수 있는 요구를 대신한다. 그는 기적적인 표징을 보았으나 예수의 정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제자로 그려진다. 공관복음의 베드로가 고백 직후 수난을 거부하여 책망받는 것과 유사하게, 요한복음의 개별 제자들도 부분적 이해와 오해를 반복한다.

19. 사도 빌립과 전도자 빌립의 혼동

사도행전 1장의 제자 명단 뒤 사도 빌립은 더 이상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6장에는 공동체의 구제 문제를 담당하도록 선출된 일곱 사람 가운데 별도의 빌립이 나온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선교하고 에티오피아 고위 관리를 만나며, 이후 카이사레아에서 네 명의 예언자 딸과 함께 사는 ‘전도자 빌립’으로 불린다.

두 빌립은 문헌 안에서 구분된다. 사도행전 8장에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하는 구조는 현지에서 활동한 빌립이 열두 사도와 다른 인물임을 전제한다. 사도행전 21장도 그를 ‘일곱 사람 중 하나’라고 명시한다.

그러나 2세기 소아시아 전승에서는 두 인물의 기억이 섞인다. 에페소스의 폴리크라테스는 ‘열두 사도 중 하나인 빌립’이 두 처녀 딸과 함께 히에라폴리스에 묻혔고 다른 딸은 에페소스에 묻혔다고 말한다. 반면 에우세비오스가 인용한 프로클로스는 히에라폴리스에 예언자였던 빌립의 네 딸과 아버지의 무덤이 있다고 전한다. 네 딸은 사도행전의 전도자 빌립과 정확히 맞는다.

가능한 설명은 세 가지다. 히에라폴리스에 실제로 사도 빌립과 딸들이 살았는데 사도행전의 전도자 빌립 전승이 합쳐졌을 수 있다. 반대로 전도자 빌립의 지역 전승을 폴리크라테스가 사도에게 잘못 귀속했을 수 있다. 또는 이름이 같은 두 인물의 전승이 이미 2세기에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결합되었을 수 있다.

이 혼동은 후대 전승을 평가할 때 중요한 경고가 된다. 비교적 이른 2세기 증언도 항상 정확한 개인 식별을 보장하지 않는다. 지역의 무덤·가족 기억·사도 권위가 결합되면 서로 다른 인물의 전기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

자료 상태: 사도행전은 열두 사도 빌립과 일곱 사람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을 구분한다. 히에라폴리스의 빌립과 딸들 전승은 2세기 자료부터 두 인물의 기억이 혼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20. 히에라폴리스 전승과 고고학

히에라폴리스(소아시아 프리기아의 온천 도시로 오늘날 튀르키예 파묵칼레 유적)는 빌립의 죽음과 무덤을 주장한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폴리크라테스의 편지는 2세기 말에 이미 이 도시가 빌립과 그의 딸들의 매장지로 알려졌음을 보여 준다. 이는 빌립의 특정 선교지에 관한 전승 가운데 비교적 이른 편이다.

후기 고대의 히에라폴리스에는 사도 빌립을 기념하는 순례 단지가 조성되었다. 팔각형 순교기념당, 행렬로, 세례 시설, 교회와 무덤 구조가 발굴되었다. 최근 발굴은 순례 중심지가 하나의 건물에 국한되지 않고 도시 지형 전체와 연결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발굴된 무덤을 곧바로 사도 빌립의 실제 무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해당 구조는 1세기 말 로마식 무덤으로 시작되었고, 후대 기독교 공동체가 이를 빌립의 무덤으로 재해석하고 기념 공간으로 확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고학은 이곳에서 빌립 숭배가 강력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만, 매장자의 신원을 증명하는 동시대 비문이나 연속 기록은 제공하지 않는다.

사도 빌립과 전도자 빌립의 혼동까지 고려하면 고고학적 장소의 인물 귀속은 더욱 어렵다. ‘히에라폴리스에 빌립 전승이 있었다’는 판단과 ‘열두 사도 빌립의 유해가 실제로 그곳에 묻혔다’는 판단은 분리해야 한다.

21. 《빌립 행전》과 순교 이야기

외경 《빌립 행전》은 여러 독립적 이야기와 순교 전승이 결합된 문헌이다. 현재 형태는 대체로 4세기에 편집되었으며 일부 더 이른 자료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경 시대에서 최소 수세기 떨어져 있으므로 빌립의 생애를 직접 복원하는 자료보다 후기 고대 공동체의 금욕·선교·성별 역할·이교 제의 인식을 연구하는 자료로 더 적합하다.

이 문헌에서 빌립은 여동생 또는 동료로 묘사되는 마리암네와 바돌로매와 함께 여러 지역을 여행한다. 히에라폴리스는 뱀 숭배와 적대적 도시로 묘사되며 빌립은 박해를 받아 거꾸로 매달린다. 이야기의 판본과 단락에 따라 죽음의 방식과 결말이 달라진다.

《빌립 행전》의 빌립은 육식·성관계·혼인을 거부하는 강한 금욕주의를 설교한다. 이는 1세기 갈릴리 제자의 직접 가르침이라기보다 3~4세기 소아시아·시리아 기독교의 금욕 논쟁을 반영한다. 여성 동료 마리암네가 세례와 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후기 공동체의 쟁점을 드러낸다.

빌립이 히에라폴리스에서 죽었다는 핵심 지역 기억이 외경보다 앞선 2세기 말에 확인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순교 방식, 뱀 도시, 마리암네의 동행, 기적과 대화는 훨씬 늦은 서사적 확대다. 초기 지명 전승이 존재한다고 해서 외경의 세부 내용까지 역사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항목 역사적 판단
출신 요한복음에서 벳새다 출신으로 기록
예수와의 관계 열두 제자 구성원이며 요한복음에서 여러 질문과 중개 역할 수행
공관복음 기록 명단 외 개별 행적 없음
예수 사후 행적 사도행전 1장 이후 확인되지 않음
전도자 빌립과의 관계 정경에서는 별도 인물, 후대 전승에서는 혼동됨
히에라폴리스 2세기 말부터 빌립의 무덤 전승 확인, 후기 고대 순례 유적 존재
죽음 정경 기록 없음, 외경에서 여러 형태의 순교 전승 형성
고고학적 판단 빌립 숭배 장소는 확인되나 실제 유해의 신원은 확인 불가

IV. 바돌로매

22. 이름만 남은 열두 제자

바돌로매는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사도행전의 명단에 모두 들어 있지만, 그 밖의 정경 본문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특정 사건에 개별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출신지·직업·가족·성격·예수와의 최초 만남도 기록되지 않는다.

이 침묵은 바돌로매가 허구라는 뜻이 아니다. 서로 문학적으로 관련된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명단에 안정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므로 열두 제자 집단 안에 그 이름을 가진 인물이 있었다는 전승은 비교적 이르다. 다만 공관복음의 명단들이 완전히 독립된 증언은 아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고,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같은 저자의 연속 저작이다.

‘바돌로매’가 부칭이라면 그의 개인 이름은 소실되었다. 아버지 톨마이가 누구였는지, 왕족 이름 ‘프톨레마이오스’와 연결되는지, 농경을 뜻하는 어근과 관련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어원 설명이 있으나 확정하기 어렵다. 후대 전승은 그에게 ‘나다나엘’, ‘예수아’, ‘바르톨로마이오스’ 등의 이름을 부여했지만 정경은 바돌로매 외의 이름을 제공하지 않는다.

자료 상태: 바돌로매가 열두 제자 명단의 구성원이었다는 전승은 복수의 정경 목록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이름 외의 생전 행적은 정경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23. 바돌로매와 나다나엘은 같은 사람인가

요한복음에는 바돌로매라는 이름이 없고, 대신 나다나엘(히브리어계 이름으로 ‘하느님이 주셨다’는 뜻)이 등장한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예수에게 데려오며, 예수는 그를 속임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장에서는 나다나엘이 갈릴리 가나 출신이며 부활 현현 장면에 참여한 일곱 제자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바돌로매와 나다나엘 동일설의 근거는 주로 배열이다. 공관복음에서 빌립과 바돌로매가 인접하고, 요한복음에서는 빌립과 나다나엘이 연결된다. ‘바돌로매’가 부칭이므로 개인 이름이 나다나엘일 수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또한 요한복음이 열두 제자의 완전한 명단을 제시하지 않으므로 나다나엘이 열둘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동일시는 정경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는다. 초기 교부들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와 예로니무스는 나다나엘을 열두 제자와 구분했다. 일부 동방 전승은 나다나엘을 열심당원 시몬과 연결하기도 했다. 바돌로매=나다나엘이 보편적 교회 전승으로 굳어진 것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다.

요한복음의 나다나엘은 독립된 문학적 기능을 갖는다. 그는 나사렛을 의심하지만 예수와의 대화 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한다. 그의 무화과나무 장면은 야곱·이스라엘·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연결하는 요한복음의 상징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이 인물을 공관복음의 빈 이름 바돌로매와 동일시하면 전기적 공백은 채워지지만, 본문 각각의 독립적 구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 서술에서는 ‘바돌로매는 나다나엘과 흔히 동일시된다’고 기록하되, 나다나엘의 출신과 발언을 바돌로매의 확정 전기로 옮겨서는 안 된다. 동일인일 가능성은 있으나 입증되지 않았다.

24. 사도행전 이후의 완전한 침묵

사도행전 1장에서 바돌로매는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사도 명단에 포함된다. 그 뒤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오순절 설교의 대표는 베드로이고, 성전 활동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등장하며, 공동체 행정과 선교는 스데파노·빌립·바울 중심으로 전환된다.

바돌로매가 예루살렘 공동체에 얼마나 오래 남았는지, 어떤 지역으로 이동했는지, 가족이 있었는지, 사망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바울 서신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 초기 교회 문헌에서 그의 행적이 구체화되는 시점은 정경보다 훨씬 늦다.

25. ‘인도’ 선교 전승

바돌로매의 동방 선교를 언급하는 대표 자료는 에우세비오스의 《교회사》 5권이다. 그는 2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의 교사 판타이노스(초기 알렉산드리아 교리교육 전통과 연결된 인물)가 ‘인도’에 갔을 때 이미 그리스도인들을 발견했고, 바돌로매가 전한 히브리어 문자로 된 마태복음을 보았다는 전승을 기록한다.

이 기록은 바돌로매의 인도 선교를 직접 목격한 자료가 아니다. 바돌로매 시대에서 약 2세기 뒤에 기록된, 판타이노스의 여행에 관한 전승이다. 더구나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의 ‘인도’는 오늘날의 인도 아대륙만을 정확히 가리키지 않고 아라비아 남부·에티오피아·홍해 동쪽의 먼 지역을 넓게 지칭하기도 했다.

최근 연구에서는 에우세비오스가 자신의 자료에 나온 에티오피아 또는 남아라비아 방향의 여행을 인도 아대륙으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판타이노스가 실제로 어디까지 갔는지, 그곳 공동체가 보유한 복음서가 무엇이었는지, 바돌로매와의 연결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바돌로매의 인도 선교는 비교적 이른 후기 전승이지만 1세기 사실로 확정할 수 없다. 인도 서해안의 특정 도시나 공동체를 바돌로매의 활동지로 지정하는 주장은 훨씬 늦은 지역 추론에 속한다.

26. 아르메니아·메소포타미아·에티오피아 전승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창건 사도로도 숭배된다. 후대 아르메니아 전승은 다대오와 바돌로매가 1세기에 아르메니아를 선교하고 왕실과 귀족을 개종시킨 뒤 처형되었다고 서술한다. 이 전승은 아르메니아 교회의 독립성과 사도적 기원을 설명하는 중요한 정체성 서사가 되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의 국가적 기독교화는 일반적으로 4세기 초 티리다테스 3세와 계몽자 그레고리오스의 시대와 연결된다. 1세기 바돌로매 선교를 입증하는 동시대 아르메니아 비문이나 로마 자료는 없다. 관련 순교담은 여러 언어와 판본에서 훨씬 늦게 나타난다.

외경 《빌립 행전》에서는 바돌로매가 빌립과 마리암네의 동료로 등장한다. 다른 《바돌로매 행전》·《바돌로매 수난기》·《바돌로매의 질문》에서는 그가 악령을 제압하고 이교 왕국을 개종시키며 비밀 계시를 받는 인물로 나타난다. 이 문헌들은 작성 시기·언어·내용이 서로 다르며 하나의 초기 전기를 구성하지 않는다.

27. 산 채로 가죽을 벗겼다는 순교 전승

서양 미술에서 바돌로매는 칼과 자신의 벗겨진 피부를 들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 도상은 그가 아르메니아 또는 ‘인도’의 도시에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 뒤 참수되었다는 수난 전승에서 나왔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벗겨진 피부도 이 전승을 반영한다.

하지만 바돌로매의 죽음에 관한 전승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 가죽을 벗긴 뒤 참수되었다는 이야기 외에 십자가형, 곤봉 구타, 익사, 단순 참수 전승이 존재한다. 사망 장소도 아르메니아의 알바노폴리스, 메소포타미아, 인도, 흑해 주변 등으로 달라진다.

가죽 벗김 전승의 구체적 형태는 후기 수난기와 중세 성인전에서 발달했다. 처형을 명령한 왕의 이름도 폴리미오스·아스티아게스·아그리파·사나트룩 등으로 바뀐다. 일부 이름은 해당 시대 아르메니아 왕 계보와 맞지 않는다. 이는 역사적 행정 기록보다 전형적인 왕실 개종·이교 사제 반발·사도 순교 서사에 가깝다.

28. 유해 이전과 여러 무덤

바돌로매의 유해에 관한 전승은 사망지 전승만큼 복잡하다. 그의 시신 또는 유해가 메소포타미아의 다라, 흑해의 섬, 시칠리아 인근 리파리섬, 베네벤토, 로마의 티베르섬으로 차례로 옮겨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서로 다른 지역의 교회가 머리뼈·팔·피부·뼈 조각을 성유물로 주장했다.

따라서 특정 성당에 바돌로매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는 진술은 해당 교회의 전승으로 표현해야 한다. 역사학은 신앙적 진정성 판단과 별개로 문헌의 최초 등장 시기, 이동 경로의 일관성, 물질 자료의 연속성을 검토한다. 바돌로매의 경우 이 기준을 충족하는 확정적 유해는 없다.

항목 역사적 판단
이름 ‘톨마이의 아들’이라는 부칭일 가능성이 높음
예수와의 관계 열두 제자 명단에 안정적으로 포함
출신·직업 정경 기록 없음
나다나엘과 동일성 가능한 후대 조화이나 정경과 초기 교부 전승에서 확정되지 않음
사후 행적 사도행전 1장 이후 기록 없음
인도 선교 4세기 에우세비오스가 더 이른 전승을 기록하지만 지리와 전달 과정이 불확실
아르메니아 선교 지역 교회의 중요한 사도 전승이나 동시대 증거 없음
죽음 가죽 벗김·참수·십자가 등 전승이 충돌
유해 여러 지역이 주장하며 역사적 신원 확인 불가

V. 세 인물의 기억이 만들어진 방식

29. 기록이 많은 요한과 기록이 없는 바돌로매

요한·빌립·바돌로매의 사례는 사도 전승이 자료의 양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음을 보여 준다. 요한은 여러 초기 문헌에 등장했기 때문에 동일 인물 문제와 저술 귀속 문제가 생겼다. 한 사람의 이름 아래 너무 많은 문헌과 역할이 쌓였다. 바돌로매는 반대로 이름 외의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 지역과 외경이 빈칸을 채웠다.

빌립은 중간에 놓인다. 요한복음에는 개별 장면이 있으나 예수 사후 기록이 없다. 사도행전에는 같은 이름의 유명한 전도자가 등장한다. 그 결과 사도 빌립의 정경 전기와 전도자 빌립의 가족·선교 기억이 히에라폴리스에서 결합되었다.

핵심은 전승의 유무가 아니라 층위를 구분하는 일이다. 1세기 정경 기록, 2세기 교부의 회고, 3~4세기 외경, 후기 고대 순례지, 중세 성유물 전승을 한 줄의 전기로 연결하면 역사와 기억의 차이가 사라진다.

30. 사도 권위와 지역 교회의 기원

2세기 이후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의 가르침과 조직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이어진다는 사도 계승(사도들의 가르침과 권위가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사도가 특정 도시를 세웠거나 감독을 임명했다는 이야기가 중요해졌다.

에페소스는 요한, 히에라폴리스는 빌립, 아르메니아는 바돌로매와 다대오를 중심 사도로 내세웠다. 이러한 연결은 완전히 임의적일 수도 있지만, 지역에 남은 오래된 인물 기억을 제도화한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남은 자료가 대부분 전승을 제도적으로 활용하던 시기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31. 세 사람의 역사적 비교

구분 요한 빌립 바돌로매
예수 생전 기록 공관복음에서 핵심 세 제자 요한복음에서 질문·중개 역할 명단 외 기록 없음
초기 출신 정보 세베대의 아들, 갈릴리 어업 벳새다 출신 없음
예수 사후 1세기 자료 사도행전·갈라디아서에서 지도부 활동 사도행전 1장 명단만 사도행전 1장 명단만
주요 동일인 문제 사랑받는 제자·장로 요한·묵시가 요한 전도자 빌립 나다나엘
대표 후대 활동지 에페소스·밧모섬 히에라폴리스 인도·아르메니아 등 다수
죽음 전승 자연사·순교·신비적 이행 히에라폴리스 순교 가죽 벗김·참수·십자가 등
역사적 확실성 초기 역할은 높고 후반 생애는 논쟁적 생전 일부만 확인, 후반은 불확실 명단 구성원 외에는 매우 낮음

역사적 평가

요한에 관해 비교적 확실한 사실은 그가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였고, 갈릴리 어업에 종사하다 예수의 핵심 제자 집단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예수 사후에는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활동했고, 바울이 언급한 ‘기둥’ 요한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까지는 1세기 자료를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 이후의 요한은 여러 전승의 교차점이 된다. 사랑받는 제자, 제4복음서의 증언자와 저자, 서신의 장로, 밧모섬의 묵시가, 에페소스의 원로를 모두 세베대의 요한과 동일시하는 전통은 2세기 후반에 강하게 확인된다. 그러나 각 문헌은 동일성을 직접 입증하지 않으며, 장로 요한이라는 별도 인물의 가능성도 남는다. 에페소스 체류와 장수 전승은 어느 정도 오래된 지역 기억일 수 있지만 자연사·순교·신비적 이행 전승은 서로 충돌한다.

빌립에 관해 확실한 사실은 그가 열두 제자였다는 점이다. 요한복음의 벳새다 출신 전승과 나다나엘을 데려온 장면, 오병이어·그리스인·고별 담화의 질문은 빌립에 관한 독자적 기억을 보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공관복음은 그의 개별 활동을 알지 못하고, 사도행전은 1장 이후 그를 언급하지 않는다. 히에라폴리스 전승은 2세기 말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확인되지만 사도 빌립과 전도자 빌립의 혼동 때문에 인물 식별이 어렵다.

바돌로매에 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범위는 가장 좁다. 그는 열두 제자 명단에 포함된다. 그가 나다나엘이었다는 동일시는 가능한 추론이지만 초기 정경과 교부 자료가 확인하지 않는다. 인도·아르메니아·메소포타미아 선교, 가죽 벗김 순교, 유해 이전은 모두 후대 전승이며 서로 충돌한다. 그 전승들은 바돌로매 개인의 1세기 전기보다 각 지역 교회가 사도적 기원을 구성한 방식을 보여 주는 자료다.

세 사람은 예수 운동의 기억이 보존되는 세 가지 경로를 대표한다. 요한은 핵심 지도자의 기억에 여러 문헌 권위가 집중된 경우다. 빌립은 제한된 초기 기억이 동명이인과 지역 무덤 전승을 통해 확장된 경우다. 바돌로매는 이름만 남은 인물에게 세계 각지의 선교와 순교 이야기가 배정된 경우다. 이들을 하나의 연속된 성인전으로 읽으면 빈틈은 사라지지만, 실제 역사 자료가 어디에서 끝나는지도 함께 사라진다.

현재 자료로 재구성할 수 있는 예수 운동은 모든 제자의 생애가 균등하게 기록된 조직이 아니었다. 중심 인물의 기억도 여러 공동체가 경쟁적으로 재해석했고, 주변 인물의 기억은 빠르게 소실되었다. 정경 명단은 실제 관계망의 일부를 보존하지만, 후대의 사도 지도와 순교 목록은 지역 교회가 자신의 과거를 조직한 결과이기도 하다. 요한·빌립·바돌로매의 차이는 사도들의 실제 활동 차이만이 아니라 기억을 남길 문헌·공동체·성소를 확보했는가의 차이였다.

참고 문헌

1차 문헌

  • 신약성서: 마가복음 1:19–20, 3:13–19, 5:37, 9:2–13, 10:35–40, 13:3, 14:32–42, 15:40; 마태복음 4:21–22, 10:2–4, 17:1–13, 20:20–23; 누가복음 5:1–11, 6:13–16, 9:28–56; 요한복음 1:35–51, 6:5–9, 12:20–26, 13:23–26, 14:8–11, 18:15–16, 19:25–27, 20:2–10, 21:1–24; 사도행전 1:13, 3–4장, 8:4–25, 21:8–9; 갈라디아서 2:1–10; 요한계시록 1:1–11.
  • Irenaeus, Against Heresies, 2.22.5; 3.1.1; 3.3.4; 5.30.3.
  •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3.18–24, 3.31, 3.39, 5.10, 5.24, 7.25.
  • Papias of Hierapolis, fragments preserved in Eusebius and later epitomes.
  • Polycrates of Ephesus, letter to Victor of Rome, preserved in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5.24.
  • Tertullian, The Prescription Against Heretics 36.
  • Acts of John.
  • Acts of Philip.
  • Passion of Bartholomew and related apocryphal Bartholomew traditions.

현대 연구 및 학술 개요

  • Raymond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I–XII and XIII–XXI, Anchor Bible.
  • Raymond E. Brown, An Introduction to the Gospel of John, Yale University Press.
  • R. Alan Culpepper, John, the Son of Zebedee: The Life of a Legend,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 Richard Bauckham, The Testimony of the Beloved Disciple: Narrative, History, and Theology in the Gospel of John, Baker Academic.
  • François Bovon and Christopher R. Matthews, The Acts of Philip: A New Translation, Baylor University Press.
  •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Bible Odyssey, “The Beloved Disciple” and “The Apostle John.”
  • Yale Bible Study, The Gospel of John and The Johannine Epistles study materials.
  • North American Society for the Study of Christian Apocryphal Literature, e-Clavis entries on the Acts of John, Acts of Philip, and Bartholomew traditions.
  • Francesco D’Andria and the Italian Archaeological Mission at Hierapolis, studies on the Sanctuary and Tomb tradition of St. Phi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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